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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클럽 가는 걸 좋아했다. 하지만 흥이 나면 막춤을 추는 정도였지 춤을 잘 추는 건 아니었다.” 최근 서울 중구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만난 유태평양(25)은 상기된 표정이었다. 창극 연습을 마치고 온 터라 한바탕 춤을 추며 쏟아낸 열기를 채 식히지 못한 모습이었다. ‘국악 신동’ 유태평양이 무대에서 춤을 추는 건 이번이 처음. 그는 “오두방정을 떠는 웃기는 춤은 아니다. 익살스러우면서도 깔끔한 춤을 출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가운데 다리’ 요절나는 제비로 변신
소리꾼 유태평양이 ‘춤꾼’으로 변신한다. 국립창극단의 신작 ‘흥보씨’(4월 5~16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를 통해서다. 공연계의 ‘핫’한 연출가 고선웅이 극본과 연출을 맡아 ‘흥보가’를 색다른 관점으로 비트는 작품이다. 유태평양은 흥보에게 박씨를 갖다 주는 제비를 연기한다. 하늘을 나는 ‘새’ 제비가 아니라 춤바람이 난 ‘사람’ 제비다.
유태평양에게 ‘흥보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작품이다. 그는 6세 때 ‘흥보가’를 완창해 ‘국악 신동’의 수식어를 얻으며 이름을 알렸다. 2016년 초 국립창극단 입단 이후 첫 무대로 선택한 것도 바로 ‘완창판소리-흥보가’였다. 지난해 연말에는 마당놀이 ‘놀보가 온다’에서 흥보 역을 맡았다. 그는 “‘흥보가’와의 연결고리가 잘 이어지고 있다”며 “이번에는 캐릭터를 비트는 재미가 있어 더 즐겁다”며 웃었다.
애초 유태평양은 제비와 마당쇠 역 둘 중 하나를 맡을 예정이었다. 그는 “대본 리딩을 하는데 제비의 쾌활한 성격이 실제 내 모습과 비슷했다. 그래서 성격대로 까불면서 대본을 읽었다”고 전했다. 고 연출은 그런 유태평양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고민 없이 제비 역을 맡겼다.
‘제비’하면 아무래도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그러나 유태평양은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는 인물”이라고 소개한다. “제비는 절대 아무 여자에게 다가가지 않는다. 남자에게 버림받아 외로운 유부녀를 위로해준다는 ‘철학’이 있다.” 마님들을 유혹하다 남편들에게 쫓기는 제비는 결국 ‘가운데 다리’가 요절이 난다. 웃음을 담당하는 파격적인 캐릭터지만 연기는 억지스럽게 하지 않는다. 유태평양은 “연출님이 ‘감정을 표출하지 말고 군더더기 없이 연기하라’고 했다. 힘을 빼고 편안하게 연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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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유학으로 음악에 대한 시야 넓어져
어릴 적부터 판소리를 해왔지만 다른 예술 분야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영화와 연극을 좋아했다. 판소리를 할 때도 연기적인 요소를 넣으려고 노력해왔다. 유태평양은 “판소리와 연기는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창극은 늘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국립창극단에 입단한 이유다. 지난 1년간 다섯 편의 작품에 출연하며 바쁘게 활동했다. 그는 “무대 위에서 희열이 큰 만큼 공연이 끝난 뒤에는 우울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기대와 설렘으로 작품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유태평양이 ‘국악 신동’이 된 데에는 소리꾼인 아버지 유준열(2011년 작고)의 영향이 컸다. 태어나자마자 아버지와 같은 소리꾼의 길을 걸었다. 그는 “지금의 부모님이 아닌 다른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면 내가 과연 소리를 했을지 생각해본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후회는 없었다. 그는 “소리꾼이 돼야겠다는 생각에 의심을 가져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또한 “직업으로 하는 일이라면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는 당연하다”고도 했다.
한때는 오직 국악만이 음악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국악은 물론이고 재즈, 댄스 등 다양한 음악에 관심이 있다. 이 또한 아버지 덕분이다. 10대 시절 아버지의 권유로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 곳에서 국악 외에도 다양한 종류의 음악이 있음을 몸소 느끼고 왔다. 최근 관심사는 사진. 카메라를 늘 갖고 다니면서 좋아하는 풍경과 사람들을 사진으로 담고 있다. 그는 “여행을 좋아해 추억을 간직하고자 사진을 독학으로 배웠다”며 “사진은 추억과 향수를 다시 느낄 수 있게 해줘서 좋다”고 말했다.
20대 또래들처럼 세상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사회에 대한 관심도 부쩍 늘어났다. ‘흥보씨’는 지금 시대에 ‘착하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한다. 유태평양도 작품의 주제의식에 동의한다. 그는 “요즘 같은 시대에 착한 게 무엇인지 의문이 안 생기면 이상할 것 같다”며 “‘흥보가’처럼 착한 사람이 인정을 받고 ‘적벽가’처럼 친구간의 우애가 빛을 발하는 세상, 그런 ‘판소리 이야기’ 같은 세상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