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선상원 기자] 새누리당이 국회 복귀를 선언했다. 새누리당은 4일부터 국정감사에 복귀하기로 했고 정세균 국회의장의 사퇴를 촉구하며 단식 농성에 들어갔던 이정현 대표는 6일 만에 단식을 중단했다. 사과는 없다고 버티던 정세균 의장의 유감 표명도 뒤따랐다.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처리문제로 촉발된 국회 파행 사태가 일단락됐다.
여소야대 20대 국회는 생산적 정치와 협치, 민생국회를 내걸고 출범했지만 첫 정기국회부터 여야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줬다. 19대 국회처럼 적대적 대립만 있을 뿐, 대화와 타협, 공존은 없었다. 대화와 타협의 전제인 상식과 관례, 법적 절차도 무시당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야당은 박근혜 대통령이 인사청문회서 부적격 결론을 내린 김 장관을 임명하자, 인사쇄신을 촉구한다며 김 장관 해임건의안을 빼들었다. 국회는 헌법 63조에 따라 국무총리나 국무위원의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다. 탄핵소추가 아닌 정치적인 해임 건의이기 때문에, 해임건의 사유에 제한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상식이 있다. 장관의 직무수행에 문제가 있거나 법률에 저촉되는 행위를 했을 때 등 기본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 이번 해임건의안은 청문회 과정에서 논란이 됐던 사안들이 해임건의 사유로 제시됐다. 야당이 힘 과시에 나섰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국민의당이 발을 빼기는 했지만, 더민주와 정의당은 지난달 21일 해임건의안을 발의했고 22일 국회 본회의에 보고됐다. 국회법 112조7항에 따라 해임건의안은 본회의에 보고된 때로부터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에 표결해야 한다. 법률안이든 예산안이든 국회 안건은 철회가 가능하다. 여야는 개헌특위 구성이나 세월호특별조사위 활동기한 연장, 어버이연합 의혹 청문회를 놓고 협상을 벌였다. 정 의장의 맨입 발언도 이 과정에서 나왔다. 여야는 23일 해임건의안 처리 시점까지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남은 것은 표결절차였다. 마지막 대정부질문이 열린 23일 의사일정에 포함돼 있는 이상 표결은 피할 수 없었다.
새누리당이 여기서 무리수를 뒀다. 23일 본회의만 넘기는 된다는 목표 아래 예정에도 없던 의원총회를 오전 오후 2번이나 개최했다. 오전 10시에 계획됐던 본회의는 연기 끝에 오후 2시 30분에서야 열렸다. 이 때 새누리당은 야당이 총선 전에 테러방지법 처리를 막기 위해 동원했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까지 검토한 후 의원들 서명까지 받아놨다. 본회의 개의 전에 제출해야 하는데, 오후 2시에 의원총회를 하느라 이를 놓쳐버렸다. 만약 새누리당이 의원총회를 열지 않고 필리버스터 요구서를 의장에게 제출했으면 해인건의안 처리를 합법적으로 막을 수 있었다.
의원들에 의한 필리버스터가 어렵게 되자, 새누리당은 장관들에 의한 필리버스터를 했다. 악수(惡手)였다. 국민의당 의원들의 마음을 돌리게 한 자충수였던 것이다. 안건이 본회의에 올라온 이상, 국회법에 따라 정정당당하게 표결처리에 임했어야 한다.
해임건의안 가결 하루 만에 박 대통령이 이를 거부한 것도 전례에 없던 일이다. 요건을 갖추지 않은 해임건의안이라는 설명이 따랐지만, 이승만 대통령부터 노무현 대통령까지 모두 해임건의안을 수용했다. 역대 정부는 불만이 있어도 국회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5번 모두 해당 장관을 해임하거나 자진사퇴시켰다. 박 대통령이 처음으로 68년 헌정체제가 쌓아온 관례를 무시했다. 지난 10일 동안 사상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집권당 대표가 단식농성을 벌이고 국회의장을 형사고발했다.
여야는 생산적 정치와 협치를 말하기 전에, 먼저 우리 헌정체제가 만들어온 전통을 존중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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