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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육군사관학교는 미군정이 설립한 국방경비대를 국군의 모태로, 국방경비대 간부 육성을 위해 설립한 국방경비사관학교를 육사의 시초로 본다. 초기 국방경비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국방경비대에 임관한 장교 중 상당수가 일본군과 만주군 출신이라는 점에서 육사의 역사 인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헌법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천명하고 있다. 광복군이 임정을 지탱한 기둥 중 하나였다는 점에서 군당국 또한 광복군을 국군의 모태로 본다. 실제 해방 이후 국군 창설의 주역은 광복군이었다. 미군정은 유동열 광복군 참모총장에게 국방장관 격인 통위부장을 맡겼고, 유 통위부장은 국방경비대사령관에 광복군 지대장 출신인 송호성을 앉혔다. 1948년 국군 창설 때는 이범석 광복군 참모장이 초대 국방부 장관에 올라 군내 광복군의 혈통을 이어갔다.
하지만 육사는 육사의 뿌리를 광복군이 아닌 다른 곳에서 찾는다. 육사가 1996년 발간한 ‘육군사관학교 50년사’는 “국방경비사관학교는 고난의 가시밭길을 헤치고 창군과 그 후 군 발전 위업을 이룩한 군 간부들의 배움의 요람이었으며 명실상부한 육군사관학교의 모체”라고 명시하고 있다. 육사의 개교기념일 또한 국방경비사관학교 개교일인 1946년 5월 1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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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 관계자는 “국군의 정신적 혈통은 광복군에 있지만 실질적 모체가 되는 것은 국방경비대”라며 “그렇기 때문에 국방경비대 산하 국방경비사관학교가 육사의 모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국군 100년사’의 저자인 한용원(육사19기) 전 한국교원대 교수는 “육사 교수부 전통위원회 위원들은 일제의 식민통치로 군의 명맥이 단절됐기 때문에 육사의 모체는 경비사관학교라고 주장한다”며 “국가가 임정의 법통을 계승했는데도 국군의 구성원인 육사가 광복군의 정통성을 이어받지 못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육사의 뿌리를 광복군에서 거슬러 올라가 구한말 세워진 신흥무관학교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광복군이 소속됐던 상해 임시정부가 대한제국 계승을 천명했었다는 이유에서다.
이기윤 전 육사 교수는 “육사의 뿌리는 국방경비사관학교가 아닌 1911년 6월 창설된 대한제국 신흥무관학교”라며 “우리나라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임시정부는 대한제국을 계승한다고 천명한 만큼 육사의 뿌리도 신흥무관학교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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