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양희동 기자] 얼마 전 한 건설사가 신규 분양한 아파트는 청약 1순위에서 수십대 1의 높은 경쟁률로 전 가구 마감됐다. 해당 단지 분양 소장은 회사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을까. 언뜻 생각하면 칭찬은 물론 상을 받아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분양가를 더 높게 책정했어야 한다”는 윗선의 질책이 돌아올 가능성이 더 높다.
이달부터 ‘부동산 3법’이 본격 시행돼 민간 택지에 대한 분양가 상한제가 사실상 폐지됐다. 지난 2월 말 서울·수도권 청약 1순위 기간이 단축(2년→1년)된 이후 분양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는 상황이라 건설업계에는 분명 희소식이다. “장이 섰을 때 바짝 벌어야 한다”는 일부 업계 종사자들의 목소리도 여기 저기서 심심찮게 들린다. 하지만 현재 주택시장의 흐름을 조금만 세밀히 살펴보면 섣불리 분양가를 올려선 안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난달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1만 2800건을 넘겨 역대 최다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서울 아파트값은 올해 들어 3월까지 0.6% 오르는데 그쳤다. 시장 활황기였던 2006년 당시 매달 2%가까이 올랐던 것과 비교하면 격차가 크다.
분양시장은 지난달 반도건설이 경기 동탄2신도시에 분양한 ‘반도유보라 아이비파크 5.0·6.0’아파트가 평균 50대 1이 넘는 높은 경쟁률을 보이는 등 겉으로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청약자 대부분은 분양가가 저렴한 택지지구 물량에 몰리고 있다. 전세난에 지친 실수요자가 좀 더 싼 집을 찾아다니며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셈이다. 만약 수익을 위해 무분별한 고분양가 전략을 펴면 수요자로부터 외면을 받아 애써 살아난 시장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런 우려 탓에 대형 건설사 모임인 한국주택협회는 지난달 말 66개 회원사에 공문을 보내 “과도한 분양가 인상을 자제해 달라”고 협조를 요청한 바 있다.
요즘 모든 기업들이 가장 강조하고 있는 말이 ‘고객의 니즈’다.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해 최상의 상품을 합리적 제공하는 것이 기업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건설업계는 전세난에 지친 수요자들의 니즈를 잘 살펴 이제 막 찾아온 시장의 봄을 다시 겨울로 되돌리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