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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석방 없는 무기형’ 도입에 사형제 존폐 논란

이배운 기자I 2023.11.01 06:00:00

정부 '가석방없는 무기형' 속도…사형제 대체 유력
형벌 강도 사형과 동일…사형 집행 명분 약해지나
인권위 "가석방없는 무기형, 사형폐지 전제로 지지"
사형 선고 줄고 '사실상 사형폐지국' 고착화 전망

[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정부가 ‘가석방 없는 무기형’ 도입에 속도를 내면서 국민적 관심이 쏠렸던 사형제 부활은 더욱 멀어질 것으로 보인다. 사형을 대체하는 형벌이 자리를 잡으면 ‘사실상 사형폐지국가’ 상태가 고착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사진=게티이미지)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부는 석방을 허용하지 않는 무기형을 신설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으며, 조만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전날 밝혔다.

개정안은 법원이 가석방이 허용되는 무기형과 허용되지 않는 무기형을 구분해 선고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무기형 선고 대상자 중에서도 더욱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가석방 불가’ 조건을 부과하는 것이다.

사형집행 명령권자인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사형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최근엔 서울구치소에 사형집행 시설 점검을 지시하고 전국의 흉악범들을 이감시키면서 사형 부활이 초읽기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상당한 사회·정치적 후폭풍을 무릅쓰고 실제로 사형을 집행하려는 의지가 있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일례로 한 장관은 지난 7월 국회에서 “사형제는 외교적 문제에서도 굉장히 강력해 집행하면 유럽연합과의 외교관계가 심각하게 단절될 수도 있다”며 사형제 부활에 조심스러운 입장을 내비쳤다.

이런 가운데 사형을 대체하는 형벌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가석방 없는 무기형’ 도입은 사형제 존립 기반을 흔들 것으로 보인다. 사형과 동일한 강도의 형벌이 마련된 상황에서 오판의 위험성을 안고 사형제를 유지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에 힘이 실리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은 가석방 없는 무기형을 도입하면서도 현 사형제도를 존치하겠단 입장이나 시민사회 등은 ‘위헌적, 인권침해적인 법안이 2개나 동시에 있을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다만 대법원과 인권위원회는 사형제 폐지를 전제로 한 가석방 없는 무기형 도입엔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

최근 대법원은 “수형자와 공동체의 연대성을 영원히 단절시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한다”며 가석방 없는 무기형을 반대하면서도 “사형제 폐지를 전제로 논의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단서를 붙였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세계 사형 폐지의 날’ 성명에서 “사형제 폐지를 전제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정부 여당의 구상대로 사형제도가 존치된 상태에서 가석방 없는 무기형이 도입되더라도 ‘사실상 사형폐지국’ 지위는 고착화될 것이란 게 법조계의 전망이다. 장영수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예전에는 사형을 선고할 사건에 대해서도 가석방 없는 무기형을 선고할 수 있게 선택지가 늘어나는 것”이라며 “법원에서 사형 선고 자체를 잘 안 하게 될 것”이라고 짚었다. 장 교수는 이어 “현재 잇따른 흉악범죄와 사형 찬성 여론 등 사형을 집행할 유인은 존재하지만, 그만큼 국내 사형 반발 여론과 국제사회의 비판 등 반대 유인도 여전하다”며 “사형제가 명목상으로만 존재하는 현 상황이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울러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법리적 차원에서 가석방 없는 무기형이 사형제를 대체할 수 있느냐는 여전히 논란이지만, 다른 현실적인 대안이 마땅치 않은 것도 사실”이라며 “궁극적으로는 엄격한 가석방 조건을 부여하는 ‘상대적 종신형’ 도입 논의로 나아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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