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요자' 말고 '투자자' 위하는 정부 …중도금대출의 역설

황현규 기자I 2021.05.26 06:00:00

분양가 20억원 루카831 오피스텔 완판
분양가의 50%까지 중도금 대출 가능
반면 아파트는 9억 넘으면 대출 0
“오피스텔 투자자 우대해주냐” 반발 커질 듯

[이데일리 황현규 기자]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오피스텔 ‘루카831’은 지난달 청약 흥행에 성공했다. 분양가(전용 70㎡ 기준)가 최고 28억원에 달하는 초고가 오피스텔이지만, 최고 경쟁률은 47대 1을 기록했다. 337가구로 웬만한 나홀로 아파트보다 규모가 큰 데다가 강남 역삼동 노른자 위치에 있어서다.

눈길을 끄는 점은 대출 한도다. 입주자모집공고를 보면 중도금 대출이 공급 금액의 50%까지 가능하다. 최고가 타입의 경우 14억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단 의미다.

반면 지난 3월 분양한 서울 강동구 고덕강일 제일풍경채 아파트의 101㎡ 타입은 루카831보다 분양가격이 낮았는데도, 중도금 대출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이 타입의 분양가는 9억~10억원에 책정됐는데, 9억원이 넘는 아파트에 대해선 중도금 대출을 제한하는 규제 때문이다.

루카831 조감도
◇초고가 오피스텔·도시형생활주택 분양 계속

오피스텔(도시형생활주택 포함)과 아파트의 중도금 대출 형평성 논란이 갈수록 거세다. 아파트의 경우 분양가가 9억원이 넘으면 중도금 대출이 전혀 나오지 않지만, 오피스텔은 분양가와 상관없이 30~70%까지 대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틈을 타 일명 하이엔드 오피스텔로 불리는 초고가 오피스텔로 투자 수요가 몰리는 풍선효과까지 나타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실수요자(아파트)가 아닌 투자자(오피스텔)에게 더 큰 혜택을 주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25일 분양업계에 따르면 올해에만 공급가액 9억원이 넘는 초고급 오피스텔·도시형생활주택 3곳이 분양에 나섰다. ‘루카 831’보다 앞서 분양에 나섰던 ‘강남원에디션’의 분양가는 전용 40~49㎡ 기준 10억~16억원에 달한다. 이 단지는 분양 당시 최고 경쟁률이 10대 1을 기록했다.

도시형 생활주택인 이 단지도 아파트보다 대출규제를 느슨하게 적용받는다. 시행사에 따르면 공급가액의 35%를 중도금으로 납부하는데, 중도금 전액을 대출받을 수 있다. 도시형생활주택은 아파트와 달리 시행사가 중도금 대출 규모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분양 관계자는 “대부분 이 주택을 분양받는 사람들은 투자 목적이 강하다”며 “평수가 작은데다가 입지가 좋아 전세를 노리고 투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도금 전액을 다 대출로 받고 추후 전세금으로 잔금을 치르면 된다”고 설명했다. 오피스텔과 도시형생활주택은 청약통장이 필요 없을 뿐 아니라 유주택자들도 청약(추첨제)에 참여할 수 있다.

[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전세 규제까지 제외?…형평성 논란 커질 듯

지난 24일 분양을 시작한 도시형생활주택인 ‘신공덕아이파크’ 전용 49㎡ 분양가도 9억 3000만원에 달한다. 이곳의 분양가 또한 9억원이 넘지만 아파트와 달리 중도금 대출이 가능하다. 이 단지의 경우 공급가액의 40%까지 중도금 대출이 가능하다. 나머지 잔금 대출 금액은 입주 즉시 세입자를 구해 충당할 수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오피스텔과 도시형생활주택은 분양가상한제를 적용받지 않기 때문에 실거주 의무가 없다. 이 관계자는 “사실상 계약금만 있으면 중도금 대출까지 해주기 때문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많다”고 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아파트 분양 시 대출규제를 조이는 반면 오피스텔 등에 대출 규제를 풀면서 일종의 ‘투자 풍선효과’가 발생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아파트 분양의 경우 앞으로 분양가가 계속 올라갈 시 대출이 하나도 나오지 않을 수 있어 형평성 논란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르면 올해 말 분양할 것으로 보이는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의 경우 전용 59㎡의 분양가가 9억원이 넘어 중도금 대출이 전혀 안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서진형 경인여대 교수(대한부동산학회장)는 “무주택자 등 실거주 목적의 아파트에 대한 대출규제를 묶고 투자 목적성이 큰 오피스텔은 방치해두니, 형평성 논란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며 “오히려 투자 상품의 대출 규제를 조이고 실거주 목적의 대출을 느슨하게 풀어주는 방향의 대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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