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초기 얄팍한 상술이라며 팬들로부터 뭇매를 맞았던 '영통팬싸'(영상통화 팬 사인회)가 K팝 팬들에게 이제 없어서는 안되는 수단으로 자리매김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장기화하면서 K팝 아티스트와 팬을 잇는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소통을 하는 창구가 되어서다.
영통팬싸란 음반사 혹은 기획사에서 지정한 기간동안 특정 가수의 앨범을 구매하면 당첨자에 한해서 메신저 영상통화 서비스를 통해 약 2분동안 가수와 직접 통화를 할 수 있는 이벤트를 말한다.
"팬들이 ATM이냐?" 비난 봇물
영통팬싸가 처음 등장했을 때 팬덤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아티스트의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한다는 점이 가장 큰 불만이었던 것. 이때문에 각 기획사에서 영통팬싸 안내사항을 게재하면 ‘이게 뭐냐’는 반응이 압도적이었다.
특히 영통팬싸의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만만치 않은 비용도 소요된다.
그룹별 차이는 있지만 방탄소년단이나 엑소와 같은 글로벌 아이돌 그룹과의 팬사인회에 당첨되려면 100장 이상의 앨범을 구매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장당 1만원씩만 계산하더라도 영통팬싸의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100만원을 지출해야 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우리를 팬이 아닌 ATM으로 생각하냐’는 분노가 섞인 반응도 나왔다.
영통팬싸는 가수의 실물을 볼 수도 없을뿐만 아니라 직찍(직접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는 행위)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가성비'가 낮다는 점도 팬들로부터 비난과 외면을 받았다.
오프라인 팬사인회의 경우 행사진행 2~3시간동안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를 볼 수 있다. 특히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를 마음껏 촬영할 수도 있을뿐만 아니라 이렇게 찍은 직찍은 팬들에게 덕질을 위한 자료가 된다.
반면 영통팬싸의 경우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볼 수 있는 시간이 짧고 직찍도 건질 수 없어 팬들에게는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아이돌 팬덤 "영통팬싸 직접 해보니 장점도 많아"
하지만 영통팬싸를 개최하는 아이돌 그룹의 숫자가 늘면서 불만은 점점 줄었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가수와 팬들이 양방향 소통을 할 수 있는 창구가 사실상 없어져서다.
그 외에도 팬들은 가수와 대화하는 장면을 녹화할 수 있다는 점을 영통팬싸의 장점으로 꼽았다. 가수와의 대화 내용을 기록하고 추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A그룹의 팬인 박슬기(여·25)씨는 “좋아하는 아이돌이 코로나19 발생 이후 데뷔했다”며 “영통팬싸가 멤버 개개인을 파악하는데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을 해석하고 분석하길 좋아하는 MZ세대 특성상 덕질을 하는 과정에서 아이돌의 캐해(캐릭터 해석)은 필수라는 것.
박씨는 “관계자의 제재 없이 녹화가 가능한 점이 영통팬싸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기존 팬사인회 이벤트에서는 사인을 받는 당사자와 가수의 대화 내용을 녹음할 수 없다. 그는 이어 “응모자가 원하는 장소에서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다"며 행사 당일에 겪는 육체적·심리적 피로도도 낮은편”이라고 설명했다.
지방에 거주중인 김승지(가명·22세)씨는 "대부분의 오프라인 팬사인회는 서울에서 열린다"며 "영통팬싸는 집에서도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비용 부담이 적다"고 말했다.
가요계 "코로나 이후에도 비대면 콘텐츠 성장가능성 높다"
영상통화 팬사인회의 초기 주자였던 한 아이돌 그룹의 기획사 관계자 B씨는 “보통 100명의 인원을 대상으로 하는 대면 팬사인회와 다르게 영통 팬사인회는 30~5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다“며 “당첨 인원이 절반 이상 줄었지만 영통팬싸 기간 동안 판매한 앨범 수량은 코로나19 이전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이어 “영통 팬사인회에 당첨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B씨는 “업계 입장에서도 비대면 비즈니스를 통해 비용을 절감하고 시공간의 제약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비대면 콘텐츠를 활용한 마케팅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예측했다.
오히려 직접 가수를 만나고 싶은 팬과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팬 모두를 위해 대면·비대면 소통 콘텐츠를 병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또 다른 가요계 종사자 C씨는 “코로나라는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급작스럽게 비대면 소통을 하고 있다”며 “일부 업계 관계자들도 비대면 소통 및 콘텐츠에 대한 충분한 경험이 없어 이에 적응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단순하게 전화 통화를 하거나 공연 실황을 송출하는 수준’이라며 ‘현재 상용화 되고 있는 5G·VR(가상현실) 같은 기술력과 비대면 소통 콘텐츠를 결합하면 비대면 소통 콘텐츠의 발전가능성은 무궁무진 하다”고 전망했다.
/스냅타임 정한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