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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레이팅스는 최근 미국을 향해 이른바 ‘대선 불복’에 따른 정치 불확실성을 언급하며 “향후 국가신용등급을 매길 때 미국이 이 역사에서 벗어난다면 부정적으로 볼 것”이라고 경고했다. 11월3일 미 대선이 그 어느 때보다 ‘불복’ 논란으로 점철될 공산이 커진 가운데 이 경우 피치의 최고등급인 ‘AAA’를 받은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이 강등하는 사태가 불가피할 수 있다는 의미다. 피치가 ‘AAA’를 준 국가는 미국 외에 독일, 호주, 싱가폴, 스위스 등 10개국이다.
강등 현실화 땐…투자자 신뢰 하락→시장 요동 가능성
‘안정적인 정권 재창출 또는 정권 이양’이라는 아주 당연한 민주주의적 절차에 대해 피치가 이처럼 이례적인 경고에 나선 건 작금의 정치적 분열상과 이로 인한 월가(街)의 초조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라는 평가다. 투자회사 RBC 캐피털 마켓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포트폴리오 매니저들 사이에서 가장 큰 관심은 이번 대선 결과로, 코로나19 사태나 경제회복 여부 등을 압도했다고 미 CNN방송이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월가의 리더격인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CEO)가 전날(12일) 실적발표 후 회견에서 “나는 이 나라에 대해 큰 믿음을 가지고 있다. 나는 우리가 적절한 선거를 할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불안감 해소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대선 불복 사태가 현실화하고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강등이 이뤄질 경우 그 파장이 만만치 않다는 데 있다. 제1 경제대국인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은 투자자들의 신뢰 하락을 불러 잠재적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을 요동치게 할 공산이 크다.
더 나아가 신용등급 하락은 이자율을 뛰게 하고 소비를 압박해 경기침체를 부채질할 수도 있다. 이미 피치는 지난 7월 재정 악화를 이유로 미국에 대한 전망을 다소 부정적으로 내다본 바 있다.
피치는 대선 이후 정치적 불확실성이 최소 수 주간 지속할 수 있다고 우려하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 모두) 대선 결과를 수용할 건지, 내년 1월20일 질서있는 정권 재창출 또는 이양이 이뤄질지 모니터링할 것”이라고 거듭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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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미국에선 과거에도 대선 불복과 비슷한 전례가 있었다. 공화당의 조지 W(아들) 부시와 민주당의 앨 고어가 맞붙었던 2000년 대선 때가 대표적이다. 당시 미 대법원이 부시 대통령의 승리 판결을 결정할 때까지 미 금융시장은 부침을 겪었다. RBC 캐피털마켓에 따르면 당시 6주간 뉴욕증시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는 무려 12%나 폭락했었다.
그러나 금융시장은 부시 대통령의 승리가 확정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안정을 되찾았다. 당시는 지금처럼 ‘정치적 분열상’이 극에 달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피치는 “2000년 대선은 미국에 대한 투자자의 신뢰를 약화시키지 않았다”고 했다.
이번에는 상황이 다소 심각하다. 이 같은 정치적 양극화는 트럼프 행정부 2기가 되든, 바이든 행정부 1기가 되든, 정치적 불확실성이 제거되더라도 핵심 이슈에 대한 정책 결정 등 차기 정부에 적잖은 부담을 줄 수 있다. 더구나 미국은 코로나19의 여파가 지속하는 가운데 피치가 AAA 신용등급을 준 국가 중 가장 많은 부채까지 짊어지고 있다. 미 의회예산국(CBO)에 따르면 미 연방정부의 부채는 21조9000억달러(약 2경6006조2500억원)에 달해 국내총생산(GDP)의 104.4%에 달할 전망이다. 미 정부 부채가 GDP를 넘어서는 건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다.
기타 고피나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 전날 10월 세계 경제전망(World Economic Outlook) 발표 이후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이번 대선은 여느 선거와 마찬가지로 치러지게 돼 있는 만큼 대선 전후 심각한 혼란을 겪지 않을 것이라는 게 우리의 관측”이라면서도 “그렇지 않고 정치적 불확실성 등이 고조된다면 미 경제에 분명한 하방 위험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