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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는 10여차례 업계 간담회를 진행했다고 했다. 하지만 재포장 규제 시행 2주일 남짓 압둔 업계의 반응은 ‘정확하게 무엇이 규제 대상인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이 가운데 포장 전문 하청업체들은 일감이 사라진다는 불안감에 시달려야 했다.
환경부가 처음 재포장 규제 카드를 꺼낸 것은 지난해 1월이었다. 앞서 2018년 발생한 플라스틱·비닐 대란의 대책인 ‘재활용폐기물 관리 종합대책’의 일환이었다. 불필요한 제품 포장을 규제하자는 게 골자다.
환경부는 2018년 7월부터 연구용역을 진행했다. 이어 9월부터 현재까지 이해관계자 의견을 들어왔다고 한다. 국내 정책결정에 걸리는 평균 소요시간은 371일이다. 사실상 2년 가까운 준비 시간을 가졌기 때문에 국내 다른 정책보다 훨씬 정교하고 세심하게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했다.
하지만 업계 현실과 고충이 아니라 최초의 안에서 빈틈이 발생하면 이 빈틈을 메우는 것에 집중해 점점 난해한 규제가 됐다.
일례로 바코드가 찍혀있으면 재포장이 아닌 것으로 본다는 내용이 있어 재포장 형태여도 바코드만 찍혀있으면 규제에서 벗어나는 것이냐는 의문이 제기되자 뒤늦게 해당 규정을 거뒀다. 자칫 최초 정책 목표까지 무색한 규제가 될 수 있었다.
결국 환경부는 시행을 열흘 가량 남긴 22일 6개월 연기를 결정하고 의견 수렴을 더하겠다고 밝혔다.
2018년 초 플라스틱·비닐 대란을 겪으면서 기업과 소비자를 비롯한 우리 사회는 불필요한 폐기물을 줄여야 한다는 것에 이미 공감대가 형성됐다. 불편이 예상됐던 커피전문점 내 다회용 컵 사용도 이제는 일상이 됐다. 기업들도 친환경을 경영 기조로 삼고 있다. 누구도 환경부의 정책 목표에 반대하진 않는다는 뜻이다.
운전자들이 종종 저지르는 실수가 있다. 나름대로 조심스럽게 운전을 한다고 몸을 운전대에 바짝 붙이고 고개를 유리창 쪽으로 들이민다. 이 자세에선 오히려 시야가 좁아진다. 당장 눈 앞의 상황에만 집중하다보니 돌발상황에 대처하기 힘들고 사고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오히려 등을 의자에 붙이고 시야를 넓게 써야 주변 상황까지 보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불필요한 논란으로 지난 2년간의 준비가 이미 무색해졌다. 시행까지 남은 반년은 넓은 시야로 주변을 두루 살펴 소비자와 업계가 모두 납득할 수 있는 정책이 만들어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