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檢 “현대 모비스 물량 밀어내기 강제성 없다”
28일 공정위에 따르면 검찰은 현대모비스의 대리점 구입강제(밀어내기)에 대한 공정위 고발과 관련해 불기소(무혐의) 결정을 지난 21일 결정했다. 앞서 공정위는 지난 2월 현대모비스가 대리점에 거래상 지위 남용(구입강제)에 대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5억원을 부과하고, 법인과 함께 당시 사장과 부품영업본부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검찰은 공정위 고발이 형사처벌 요건에 맞지 않다고 판단했다. 우선 검찰은 형벌을 부과하려면 피해대리점을 특정해야 하는데 공정위가 제출한 고발장에는 피해자가 적시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다.
공정위가 검찰에 고발을 하는 경우에는 법 위반 여부가 시장 질서를 상당히 심각하게 훼손하거나 피해자가 입은 피해가 상당했을 때다. 특히 고발 결정 기준에는 ‘고의성’이 중요한 판단 근거로 작용한다. 공정위는 현대모비스가 대리점에 구입강제를 하는 과정에서 대리점 불만과 피해사항을 사내 감사를 통해 인지하고 있었는데도 불구 지속적으로 물량 밀어내기를 지시한 것은 고의적이라고 판단해 당시 수뇌부를 검찰에 고발했다.
공정위는 증거자료로 설문조사 결과 445개 중 14.6%에 대항하는 65개 대리점이 원치 않은 부품을 구입했고, 대리점 대표자 방문조사에서도 현대모비스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불이익을 줬다는 진술을 담기도 했다.
하지만 검찰은 대리점주를 상대로 수사를 했지만 공정위 조사와 달리 피해자가 피해를 봤다는 진술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소 여부를 따질 수 없다는 게 검찰의 논리다. 공정위 관계자는 “형벌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현대모비스 사안의 경우 세세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피해자를 특정할 수 없긴 하지만 물량 밀어내기가 수뇌부 결정에 따라 고의적으로 이뤄졌다는 측면에서 고발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검찰이 현대모비스가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일률적으로 구입을 강제한 것으로 보기가 어렵다고 판단한 점이다. 이는 공정위가 현대모비스를 재재한 핵심적인 사안인데 검찰이 이를 부정한 것이다. 형사처벌과 행정소송은 기본적으로 별개이긴 하지만, 검찰의 판단이 자칫 서울고등법원에서 진행중인 행정소송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검찰은 조사 과정에서 “물량 밀어내기는 강제성이 없었다”는 현대모비스 측의 입장을 들어준 것으로 보인다. 현대모비스는 밀어내기 물량 중 일부는 반품을 받기도 했고, 부품 특성상 변질 우려가 없기 때문에 대리점에 부담이 없었다는 식으로 줄곧 항변해 왔다. 남양유업 ‘갑질’의 경우 유제품 특성상 변질 문제로 대리점에 큰 피해를 입힌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설명이다.
반면 공정위는 현대모비스의 ‘갑’의 지위에 주목해야 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대리점은 정비용 부품시장 점유율 70%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시장지배적사업자인 현대모비스를 요구를 외면할 수 없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희생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외형적으로 협의를 한 매출이라는 형태를 띠고 있지만, 대리점은 현대모비스에 절대 열위적인 지위가 있는 상황에서 어쩔수 없이 과도한 물량을 받은 것이 이 사안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대리점이 받은 피해 기록이 세세하게 남아있지 않지만 여러 정황상 현대모비스가 ‘갑질’한 것은 분명하다는 게 공정위 입장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현대모비스의 내부 감사결과, 대리점협의회와 현대모비스 간담회 내용, 대리점주 진술 등을 통해 강제성을 입증했다”면서 “검찰 결론과 다르게 이 사안은 서울고등법원에서 행정소송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사법부의 최종적인 판단을 받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공정위과 검찰이 다툼이 있는 것은 근본적으로 형벌과 행정제재의 시각 차 때문이라는 게 법조계의 의견이다. 공정위 행정제재의 경우 기본적으로 거래 형태와 시장 상황을 중시하는 것과 달리 형벌은 행위 자체를 문제로 삼는다. 기본적으로 제재 성격이 다른데 불구하고 공정위가 행정제재에서 그치지 않고 고발을 남용하고 있는 건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취임 이후 고발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고 있다.
공정위가 고발을 정무적으로 판단한 부분도 있다. 지난 2월 사회적으로 논란이 컸던 가습기 살균제 표시광고법 위반 혐의에 대한 재조사 건이 대표적이다. 공정위는 공소·처분시효가 끝나 무혐의를 내렸던 사안을 재조사해 결국 검찰 고발을 했지만, 검찰은 기각 결정을 내린바 있다. 고발의 주요 잣대는 ‘고의성’인데 제조업체가 적극적으로 가습기살균제를 회수 노력을 했기 때문에 일부 남아있는 제품을 근거로 시효를 늘릴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당시 공정위 내부에서도 공정위가 중립성을 지키며 판단을 내리기보다는 정무적 판단을 내렸다는 비판이 나왔다.
공정위는 그간 고발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지 못해 시민단체나 국회 등에서 비판을 크게 받았다. 공정위 고발이 있어야 검찰이 기소가 가능한 ‘전속고발권’ 폐지 논의가 확대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런 비판때문에 되려 ‘고발 만능주의’가 되고 있는 것은 또다른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경쟁법 전문가는 “공정거래법의 목적은 특정 행위자를 제재하기 보다는 불공정거래 행위를 바로 잡아서 왜곡된 시장 질서를 바로 잡는 게 핵심”이라면서 “애초부터 공정거래법 수많은 조항에 형사처벌 조항을 담은 것 자체가 아이러니인데 이번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에서 공정위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로펌 관계자는 “공정위가 고발을 했는데 검찰이 기각 결정을 내려버리면 오히려 더욱 중요한 행정소송이 틀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면서 “공정위가 고발을 남용하는 것은 자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