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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문연대’ 프레임의 역설…대한민국의 정치의 상수는 ‘문재인’
“문재인 대통령이 싫은 사람은 모두 다 모여라” 반문연대의 핵심 슬로건입니다. 묘한 것은 신보수의 아이콘인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이 깃발을 들었다는 점입니다. 보수진영의 위기는 어제오늘이 아닙니다. 이대로 가면 차기 총선에서 사망선고가 예정돼 있습니다. 제1야당인 한국당은 영남 자민련 또는 TK자민련으로 몰락할 수 있습니다. 뒤집으면 민주당 장기집권 현실화입니다. 물론 대통령 지지율 고공행진은 많이 꺾였습니다. 50%가 위태롭다는 이야기마저 나옵니다. 그러나 보수는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도 반사이익을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리멸렬, 궤멸, 회복불가 등등 어떤 수식어로도 모자랄 위기상황입니다. 특히 보수정당 분열과 유력 차기주자의 부재는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반문연대’가 현 시점에서 가장 정확한 해법일 수 있습니다. 작은 차이를 넘어 ‘문재인 반대’라는 기치 아래 대통합을 이뤄야 회생의 발판이라도 마련할 수 있습니다. 반문연대의 구체적 결과물은 보수대통합입니다. 늦어도 2020년 4월 21대 총선 전까지는 문재인 또는 민주당과의 일대일 구도라도 만들어야 뭔가를 해볼 수 있다는 전략입니다. 전망은 불투명합니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반문연대’의 역설입니다. 패배주의적 프레임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통치행위에 반발하는 세력들이 모두 뭉쳐야 할 정도로 대통령 절대 우위의 정치지형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정치의 상수입니다. 2016년 4월 20대 총선, 그해 말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박근혜 대통령 탄핵, 그리고 이듬해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과 19대 대선을 거치면서 다소 유약한 이미지의 야권 지도자에서 한국정치의 상징으로 떠올랐습니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6개월은 정치인 문재인의 그야말로 독무대였습니다. 나머지 인사들은 ‘문재인’이라는 상수 아래 놓인 종속변수들입니다. 안철수, 홍준표, 유승민 등 대통령과 맞섰던 유력 정치인들의 위상은 한없이 추락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시진핑, 김정은 등을 상대하며 헤비급으로 체급을 올렸습니다. 보수진영의 유력 정치인들은 플라이급으로 주저앉았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반문연대는 일대일 전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나온 고육지책입니다. 더구나 ‘특정 정치인 반대’라는 네거티브 프레임이 한국 정치사에서 성공을 거둔 경우도 사례를 찾기 힘듭니다.
◇“경제 망치고 北에 통째로 나라 넘긴다” 보수의 文대통령 비판이 통하지 않는 이유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보수의 비판은 매우 직설적입니다. 지지율이 ‘90%’에 육박했던 2017년 5월 취임 직후를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후한 평가를 내린 적이 없습니다. 비판의 연속입니다. 크게 두 가지 이유입니다. 하나는 실력도 전혀 없는 운동권 아마추어 정부가 어설픈 실험으로 나라경제를 망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북한에 평화를 구걸하면서 나라를 통째로 넘기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난 9월 평양정상회담 이후 김정은 위원장이 송이버섯 선물을 보낸 것에 대한 답례로 문재인 대통령이 제주산 감귤을 보냈을 때 “북에 보냈다는 귤 상자 속에 귤만 들어있다고 믿을 국민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황당한 의혹이 제기된 적도 있습니다. 경제는 물론 외교안보에 대한 보수의 비판에 적극 동의하는 사람도 있고 전혀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거의 대부분 동의하는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문재인 결사반대층’입니다. 단 하나도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은 ‘문재인 열혈 지지층’입니다.
문제는 보수의 반대논리에 확장성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정치지형은 대체로 보수 40 vs 진보 40 vs 중도 20으로 나뉩니다. 때로는 중도층을 보다 넓게 잡아서 보수 30 vs 진보 vs 중도 40으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정치지형을 어떤 식으로 분류하든 선거승리의 방정식은 ‘중도층 공략’입니다. 전통적 지지층인 집토끼를 지키면서 중도층으로 외연을 확장하는 게 핵심입니다. 말로는 간단한데 실천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집토기를 지키면 외연확장이 어렵고 외연확장에 나서면 전통적 지지층이 반발합니다. 보수는 국정농단과 탄핵사태를 거치면서 원래 정치지형보다 파이가 많이 쪼그라들었습니다. ‘문재인 무조건 반대’을 외칠 경우 어떤 경우에도 지지를 철회하지 않을 강경 보수층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태극기부대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다만 대선·총선승리의 필수전제인 중도층으로의 외연확대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한국은 선거라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주류세력의 변화와 정권교체를 이룩해온 성숙한 민주국가입니다. 87년 평화적 정권교체 → 92년 문민정부 탄생 → 97년 수평적 정권교체 → 2002년 아웃사이더 노무현 당선 → 2007년 진보에서 보수로 정권교체 → 2012년 보수의 정권재창출(사실상 이명박에서 박근혜로의 정권교체) → 2017년 보수에서 진보로 정권교체가 이뤄졌습니다. 약 30여년에 걸쳐 정치권력의 파란만장한 변화를 이끌어온 우리 국민들의 눈높이와 정치의식은 매우 높습니다. 쉽게 말해서 여당이 야당이었을 때와 야당이 여당이었을 때의 말과 행동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문재인정부의 외교안보 및 민생경제 정책에도 약점은 많습니다. 그런데도 보수의 비판이 통하지 않는 건 이유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집권시절을 국민들이 선명하게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비판이라기보다 대안없는 조롱과 야유에 기반한 발목잡기라는 인식이 적지 않습니다. 설령 보수의 비판에 동의하더라도 현 보수를 미래 대안세력으로 여기지 않은 국민들이 적지 않은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특정인 반대’ 네가티브 전략 대부분 실패…보수 가치회복과 반성이 급선무
차기 주자의 유무는 한국정치의 핵심입니다. 선명한 가치의 깃발을 들고 총선이나 대선국면에서 ‘나를 따르라’고 외치는 인사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희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수의 상황은 아무리 둘러봐도 “글쎄”입니다. 흘러간 물레방아를 되돌리듯이 무대에서 이미 내려와야 할 올드보이들만이 넘쳐납니다. 게다가 보수부활의 이론적 토대가 될만한 새로운 가치도 없습니다. 그저 ‘문재인 반대’라는 낡은 레토릭이 전부입니다. 현직 대통령의 무덤이라는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크게 승리하지 못한 주요 이유도 오직 반(反)트럼프 노선만을 내세웠기 때문이라는 사실에서 보수는 배워야 합니다. 길게 보면 포지티브 전략이 늘 승리했습니다. 물론 네거티브 프레임만큼 달콤한 것도 없습니다. 가성비도 높고 효과도 바로 나타납니다. 중요한 건 전쟁승리이지 작은 전투를 이기는 게 아닙니다. 한국에서 정치와 선거의 목적은 거칠게 말하면 대통령 권력 획득입니다. 작은 전투에 이기기 위해 꼼수를 쓰기보다는 전쟁승리를 위해 올인할 수 있는 담대한 용기와 장기간에 걸친 철저한 전략이 필수적입니다.
보수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합니다. 과거에 대한 반성과 가치의 회복이 급선무입니다. 반성과 성찰에 기반한 신(新)보수플랜이라도 마련해야 합니다. 이게 전제되지 않으면 모든 게 무용지물입니다. 20대 총선 참패로부터 시작해 국정농단과 탄핵, 대선패배, 지방선거 대참패를 거치는 동안 보수진영에서 누가 어떤 책임을 졌을까요? 대중의 뇌리에 기억이 없다는 건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이명박 vs 박근혜가 맞붙었던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이후 10년 동안 보수정당은 사실상 심리적 분당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지붕 두가족’이었습니다. 2016년 탄핵 이후 보수정당 분당은 기나긴 갈등에 종지부를 찍었던 확인사살이었습니다. ‘반문연대’는 아무리 세력을 모아도 ‘그 나물에 그 밥’ 수준을 뛰어넘을 수 없습니다. 반문연대는 최대치는 이언주,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김병준, 김무성, 오세훈, 황교안 등등을 뭉친 조합 정도일 것입니다. 이 모든 정치인들이 ‘반문연대’ 울타리에 합류할까요? 힘든 게 아니라 불가능합니다. 혹시 가능하다 해도 시너지 없는 봉숭아학당에 불과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