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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지주사 규제 푼다…재계 '글쎄'…"CVC도 허용"

김형욱 기자I 2018.07.20 06:07:00

[혁신성장 나선 공정위]③
재계·벤처업계 반신반의
CVC없으면 외부펀딩 어려워
대기업·벤처 모두에 부담 커

김상조(가운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5월10일 정진행(왼쪽) 현대자동차 사장, 윤부근(오른쪽) 삼성전자 부회장 등 10대 그룹 경영진과 함께 정책간담회 자리에 들어서고 있다. 걷고 있다.10일 오전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의에서 열린 공정거래위원장과 10대 그룹간 정책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이데일리DB
[이데일리 김형욱 김정유 조진영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집단의 벤처기업 투자를 활성화하겠다며 ‘벤처지주회사’ 관련 규제 완화에 나섰지만 정작 업계 반응은 반신반의다. 이것만으로 17년째 유명무실한 제도가 활성화하겠느냐는 의구심이다. 업계가 요구해 온 지주회사의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탈(CVC) 설립 허용 논의가 지지부진한 데 대한 아쉬움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의 유정주 기업제도팀장은 19일 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벤처지주회사는 벤처기업 지분 20% 이상을 가져야 하는 제약이 있고 외부 펀딩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이는 결국 그룹-벤처기업 모두의 부담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벤처지주회사 제도가 만들어진 2001년 이후 이를 설립한 대기업집단은 전무하다. 카카오가 최근 체제 전환 과정에서 자연스레 벤처지주회사 형태를 갖추게 됐으나 이를 스스로 포기했다. 그만큼 매력적이지 않다는 방증이다. 한 대기업 지주사 관계자는 “벤처지주사를 설립하면 우리가 투자에 대한 책임을 떠안고 주가 하락 땐 주주가 항의한다”며 “우리로서도 (벤처기업에) 자율성을 주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장기적으론 벤처기업이 미성숙한 상태에서 대기업 수준의 규제를 받는 것도 부담이다. 벤처기업의 대기업집단 포함 유예기간을 10년으로 늘려준다지만 10년 후엔 어차피 상호출자 제한이나 공시 의무 등 각종 규제가 생기는 건 마찬가지다.

업계는 지주사의 CVC 설립 허용이 대안이라고 입을 모은다. 현재는 산업이 금융 자회사를 둘 수 없도록 한 금산분리 규정에 막혀 있는데 CVC에 대해선 긍정적 효과를 고려해 예외로 해달라는 것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금산분리는 기업집단이 (금융)고객 돈으로 사익편취하는 걸 막자는 건데 벤처캐피탈은 투자유치란 목적성 자본인 만큼 금산분리 잣대를 들이대는 건 부당하다”고 말했다. 만에 하나 CVC가 다른 데 돈을 쓰면 횡령으로 처벌하면 된다는 것이다.

지금도 많은 대기업집단이 벤처캐피탈(VC)를 운영하고 있다. 삼성그룹 삼성벤처투자나 LG그룹 LG테크놀로지벤처스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지주사가 주도하지 않는 만큼 조성도 어렵고 운용에 한계가 있다. 유정주 팀장은 “지주사 밖에서도 CVC를 운용하면 그룹 내 시너지도 내기 어렵다”며 “대기업이 단순히 사회공헌 차원에서 (VC를) 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벤처 자금을 끌어모아 벤처 생태계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이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정부가 재벌그룹에 지주사 체제 전환을 유도하는 상황이라 대기업 VC 운용 환경은 더 어려워지고 있다. 롯데그룹은 2016년 VC인 롯데액셀러레이터를 설립하고 2년 새 300억원을 투입해 70여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그러나 그룹이 지주사 전환을 추진하면서 2년 내 이를 지주사에서 분리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투자를 받는 측인 벤처업계도 CVC 설립 허용을 바라고 있다. 이정민 벤처기업협회 혁신벤처정책연구소 부소장은 “벤처지주사 규제 완화도 벤처업계에 긍정적일 것으로 기대한다”면서도 “우리가 줄곧 요구한 CVC 설립 허용이 결국 이뤄지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김종술 한국벤처캐피탈협회 상무는 “이런 식으로 규제를 푼다고 대기업이 벤처지주사를 갈 수 있느냐는 의문”이라며 “대기업으로선 이런저런 규제가 있는 벤처지주사 대신 간단한 CVC를 좋아하지 않겠나”고 말했다.

[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용어설명

△벤처지주회사제도

대기업 지주회사의 벤처회사 인수·합병(M&A)을 활성화하기 위해 자산요건, 자·손자회사 등 지분율 요건을 완화한 제도다. 2001년에 도입됐지만 실제 활용된 사례가 없어 유명무실했다.

△CVC(기업주도형 벤처캐피탈)

창업기업에 자금을 투자하고 모기업의 인프라 제공을 통해 창업기업의 성장 기반마련을 지원하는 회사. 본사의 사업영역 확장과 관련있는 기술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탈을 말한다. M&A(인수합병)를 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투자 이익을 추구하는 PVC(Private Venture Capital)와 대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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