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권소현 박일경 전재욱 기자] 지난해 3월 시장 예상가보다 무려 7000억원이나 높은 가격을 제시한 KB금융그룹은 1조2500억원을 과감하게 베팅해 현대증권 최종 인수자로 선정됐다. 대규모 투자에 있어 오너의 결단력이 중요하다는 측면에서 주인 없는 KB금융은 현대증권 인수전 경쟁자인 한국투자증권에 밀리는 분위기였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2015년 6월 LIG손해보험 인수 작업을 마무리한 직후인데다 재무적 부담으로 ‘승자의 저주’가 있을 것이란 시장의 우려에도 과감한 투자결정이 가능했던 데에는 KB금융지주 사외이사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KB금융 회장 인선에서도 이같은 사외이사들의 소신 있는 결단력이 빛을 발했다. 정부 지분 1%도 없는 순수 민간 금융사임에도 매번 ‘낙하산 인사’를 받아들여야 했던 KB금융이 외풍을 막고 홀로서기를 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일반적으로 사외이사는 ‘거수기’라는 오명을 달고 있는 곳이 많다. 경영진을 견제하고 감시해야 하는 본연의 역할보다 경영진 편에 서서 무조건 안건에 찬성표를 던지는 관행에서 비롯된 부끄러운 별명이다. 하지만 KB금융의 사외이사는 달랐다. KB금융지주 출범전인 국민은행 시절, 이사회 의장을 맡았던 한 인사가 사외이사의 발언권과 역할에 대해 목소리를 높인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주로 사외이사에 대한 대우에 방점이 찍혀 있었지만, 어쨌든 이때부터 KB금융의 사외이사들은 집행부의 안건에 반대의사를 내기도 하고 무리한 경영계획에 제동을 거는 소신을 보여주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대표적인 예가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 시절인 2012년 ING생명 인수 무산건이다. 당시 KB금융 사외이사 9명 중 5명이 재정건전성 우려를 이유로 반대의견을 냈다. 일각에서는 어윤대 전 회장과 사외이사들의 불화 때문이라는 분석도 제기됐지만, 결과적으로 어 전 회장은 이 일을 계기로 연임 도전을 포기했다.
윤종규 회장을 뽑은 2014년 회장추천위원회도 마찬가지다. 당시 ‘낙하산 인사’끼리의 갈등으로 불거진 KB사태로 회장과 은행장이 동반 퇴진하고 차기 회장 인선이 시작되자, 회추위는 당시 정권이 밀고 있다고 알려진 은행권 모 인사 대신 과감하게 윤 회장을 택했다.
어수선한 KB를 이끌게 된 윤 회장은 취임 후 KB금융의 지배구조를 강화하는데 힘을 쏟았다. 그 일환으로 사외이사진 구성에 대대적인 변화를 줬다. 당시 KB지주 이사회 구성원 9명 중 6명이 교수였고 대부분 서울대 상대 출신이어서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많았다. 이에 윤 회장을 비롯한 사외이사추천위원회(사추위)는 외부전문기관의 평판조회를 거친 주주 측 인사, 기업인, 금융인 등을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방안을 마련했고 경영승계 규정도 꼼꼼히 다듬으면서 외풍이 비집고 들어올 틈을 막았다.
이번 윤 회장의 사실상 연임 확정은 이같은 결단력 있는 사외이사와 3년에 걸쳐 수립한 승계 시스템, 윤 회장의 경영성과가 더해져 가능했던 셈이다. 유주선 강남대 법학과 교수는 “이번 KB금융 인선에서는 사외이사가 외풍을 잘 막아낸데다 경영성과에 따른 주주들의 지지를 받은 것이 큰 힘이었다”고 분석했다.
다만 현 경영진이 뽑은 사외이사가 회장 선발과정에 참여하는 시스템에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일부 나온다. 굳이 윤 회장이 사추위에 포함돼 노조로부터 비판의 빌미를 제공할 필요는 없었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물론 이는 KB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신한금융지주과 하나금융지주 사추위에도 각각 조용병 회장과 김정태 회장이 사추위에 포함돼 있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현직 회장이 사추위에 들어가게 되면 나중에 회장 선발 시 뒷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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