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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회장이 로메티 CEO와 만나 AI 분야 사업에 대한 구상을 구체화한 곳이 바로 미국 아이다호 중부의 세계적인 리조트인 선밸리에서 매년 7월 열리는 ‘앨런앤드코 미디어 콘퍼런스’(선밸리 콘퍼런스)였다. ‘억만장자들의 여름 캠프’라고 불리는 이 행사에 이 부회장은 한국인으로 유일하게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15년 연속 빠짐없이 참석했다.
올해 선밸리 콘퍼런스도 지난 11~16일(현지시간) 엿새 일정으로 열렸고 팀쿡 애플 CEO와 루퍼트 머독 뉴스코퍼레이션 회장, 마크 저커버거 페이스북 CEO,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제프 베조스 아마존 CEO, 히라이 가즈오 소니 CEO 등 세계적 기업인과 투자자, 정부 고위 관료 등 300여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러나 이번 행사엔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 기소로 인해 16년만에 불참하면서 한국인 참가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 행사 참가자들은 선밸리를 둘러싸고 있는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고 음료와 식사도 함께한다. 여름 휴가를 같이 즐기는 형태로 진행되지만 글로벌 리더들이 모인만큼 기업 M&A(인수합병)이 논의되거나, 경쟁사 간 갈등 해소의 장으로도 활용된다. 실제 이 부회장도 부친인 이건희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실질적인 총수 역할을 맡게 된 지 두 달만인 2014년 7월 선밸리 콘퍼런스에 참석해 삼성전자와 첨예한 특허 소송을 벌이던 애플의 팀 쿡 CEO와 만났다. 그리고 얼마 뒤 삼성전자와 애플은 미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에서 상호 간 소송을 취하하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재계에선 법원의 이 부회장 구속 결정을 존중하지만 미국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FTA 재협상 요구 등 거세지는 통상 압박과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등으로 경색된 국면을 민간에서 풀어볼 수 있는 인적 자산을 활용하지 못하는데 아쉬움을 나타내고 있다. 또 삼성전자 입장에선 메모리 반도체와 스마트폰 이후 새로운 성장 동력 발굴을 위한 M&A 작업이 총수 부재로 중단된 데 따른 불안감도 여전하다. 이 부회장이 이번 선밸리 콘퍼런스에 참석했다면 인텔과 소프트뱅크 등 글로벌 IT기업이 눈독 들이고 있는 자율주행차와 커넥티드카(양방향 정보 통신이 가능한 차량) 등에 대해 글로벌 CEO들과 의견을 나누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