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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낙원상가 내 ‘추억을파는극장’에서 만난 김은주(43) 대표는 세계 최초로 실버영화관을 연 혁신가이자 사회적 기업가다. 2009년 처음 문을 연 300석 규모의 실버영화관은 지난해 연인원 19만5000명의 관객을 유치해 서울의 대표적 실버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21일 오후 2시, 실버영화관의 암막을 살짝 열고 들어가니 200여명이 넘는 노인들이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한 1943년 작(作) ‘데스티네이션 도쿄’에 몰입 중이었다. 김 대표는 “영화관 특성상 낮부터 관객들이 항상 가득찬다”고 설명했다.
◇노는 것 좋아했던 청년…공기업 직원에서 영화관 마케터로
김 대표는 자신을 “여느 또래처럼 나이트클럽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 청년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대학 졸업 후 그의 첫 직장은 한국전력(015760) 사무직. 공기업 특성상 지루한 업무의 반복이 이어졌다.
2년이 지난 어느 날 회사 선배가 그에게 외환카드에서 영화마케팅 자리를 추천했다. 김 대표는 “한전이라는 직장에 연연해 하지 않았다”며 “여성·사무직의 한계가 뚜렷이 보이는 조직에서 머무느니 도전을 선택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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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단관극장의 시대는 저물고 있었다. 서울의 대부분 영화관이 멀티플렉스로 전환됐다. 이에 더해 2000년대 중반 문화재청은 스카라극장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하려 했다. 당시 건물주는 문화재 지정 전 영화관을 철거한다. 김 대표는 함께 일했던 동료들의 고용승계를 위해 낙원상가에 있던 예술영화관을 임대한다. 그는 “당시 임대조건이 파격적이었다”며 “예술영화관도 경영난을 겪다 보니 저와 뜻이 맞았다”고 회고했다.
◇고용승계 위해 시작한 실버영화관…20만 실버의 명소로
정작 경영을 시작했지만 어떻게 이 공간을 이용할지 고민이었다. 김 대표는 “주변에 노인이 많았고 그들을 위한 극장이 없다는 것에 착안했다”며 2009년 세계 최초의 실버극장이 문을 열게 된 계기를 말했다. 2012년 서대문 화양극장이 재개발로 폐관하며 김 대표는 실버영화관에 더 집중한다. 첫해 6만5000명인 관객은 입소문을 타며 지난해 약 20만명으로 빠르게 늘었다.
실버영화관은 다른 영화관에 비해 외관상 오래돼 보이고 어설프다. 현수막조차도 색이 바랬다. 김 대표는 “어르신들이 영화관을 꾸미는데 돈을 쓰지 말라고 부탁한다”며 “한편으로는 과거 추억을 간직하고 싶어 그런 것 아닐까”라고 답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개보수는 꾸준히 진행 중이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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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영화관의 티켓가격은 개관 이후로 지금까지 2000원이다. 김 대표는 이 가격을 올리지 않을 거라 강조했다. 대신 그는 “SK(034730)의 사회성과인센티브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며 “성과를 돈으로 환산해서 받는데 지난해 1억원을 지원받았다”고 말했다.
그의 꿈은 이제부터다. 김 대표는 “미래산업에 대한 말이 많지만 고령사회에 대한 대처야말로 그 답”이라며 “앞으로 한국형 사회적 기업의 롤모델로 자리매김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