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동반자' 제약사-도매업체 티격태격..왜?

천승현 기자I 2015.06.19 03:00:00

제약協 "도매상 유통질서 실태 파악"..유통協 "너나 잘해"
오랜 상생관계 경기 침체로 붕괴..도매상 난립으로 혼선 가중

[이데일리 천승현 기자] 제약업계에서 협력관계를 지켜온 제약사와 도매업체가 최근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제약산업 경기침체로 제약사와 도매상의 수익성이 악화하면서 ‘벼랑 끝 밥그릇 다툼’으로 번지는 형국이다.

◇제약協 “도매상 유통질서 문란 실태 파악”..유통協 “너나 잘해”

18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제약협회는 유통질서를 어지럽히는 도매업체 실태 파악을 검토키로 결정했다. 오는 7월중 제약사들을 대상으로 도매업체들의 구입가 미만 판매행위 등에 대한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예를 들어 제약사로부터 100원에 구입한 약을 병원에 50원에 팔면서 시장을 교란시키는 행위를 저지하겠다는 의도다.

도매업체들도 맞불을 놓았다. 도매업체들을 회원사로 둔 한국의약품유통협회는 즉각 “제약협회는 월권행위를 즉각 중단하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의약품유통협회는 “제약사의 유통질서부터 조사해야 한다”며 노골적으로 불편함을 내비쳤다.

최근 제약사의 도매업 진출로 불거진 갈등이 감정다툼으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도매업계는 지난 4월부터 한미약품의 도매업 철수를 요구하며 1인 시위를 벌이는 등 압박 수위를 높였다. 한미약품이 지난 2012년 약국 영업 사업부를 분사해 온라인팜이라는 도매업체를 설립했는데, 제약사의 도매업계 진출로 도매업체들의 생존권을 위협받는다는 ‘골목상권 침해’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당시 제약협회도 ‘부당한 이익 침해’라고 맞선 상태다. 제약협회는 “온라인팜의 도매업 허가 반납과 폐쇄를 요구하는 것은 사업자단체의 역할과 권한을 넘어선 것이며 불공정거래행위에 해당하는 위법행위”라고 비판했다.

여기에 유통질서 문란 행위, 유통 마진 갈등 등 제약업계와 도매업계간의 고질적인 관행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분위기다.

◇환경 변화로 수익성 악화..영업현장서 ‘밥그릇 다툼’ 가열

국내 의약품산업에서 제약사와 도매업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협력자다. 제약사가 의약품을 개발·생산하면 도매업체가 유통을 담당하는 역할분담이 이뤄졌다.

정부도 제약사와 도매업체의 역할 분담을 적극 지원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994년부터 2013년까지 100병상 이상 종합병원에 의약품을 공급할 때 의무적으로 도매업체를 거치도록 규정한 ‘유통일원화’ 제도를 시행했다. 제약사는 연구개발과 생산을 맡고, 도매업체가 유통을 전담해 유통 투명화와 물류비용 절감을 꾀하자는 취지로 시행됐다.

하지만 2013년 유통일원화제도가 폐지되고 약가인하, 리베이트 규제 등으로 시장 환경이 급변하면서 영업현장에서 제약사와 도매업체의 관계는 삐걱대기 시작했다.

특히 수익성이 악화된 제약사들이 도매업체에 주어지는 유통마진을 줄이려는 노력을 기울이자 도매업계와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지난 2013년 도매업체들은 한독을 표적으로 삼고 유통마진 인상을 요구하며 집단으로 공급 거부 움직임에 돌입하자 한독은 유통마진을 소폭 인상하며 백기를 든 바 있다.

제약협회는 제약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유통마진 조사 결과를 토대로 도매업계의 부당한 유통마진 요구에 대해 강력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도매업체들의 무분별한 시장 진입이 영업현장에서의 혼선을 부추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등록된 도매업체는 2013년 2393곳으로 제조업체 684곳의 3.5배에 달한다. 2000년 도매업체 1046곳, 제조업체 679곳과 비교하면 도매업체만 비약적으로 늘었다.

연 매출 1조원 이상을 기록 중인 지오영을 비롯해 일부 대형 도매업체를 제외하면 대다수의 도매상들은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제약사를 그만둔 영업직원들이 새로운 도매상을 설립하는 방식으로 시장에 속속 진출했는데, 영세 도매업체의 무분별한 진출로 영업현장 전체가 혼탁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처방현장에서 같은 의약품의 판매를 두고 제약사와 도매상간의 경쟁이 벌어지는 기현상도 생겨나고 있다.

제약사 한 영업사원은 “특정 지역을 거점으로 하는 도매상이 의료기관이나 약국에 과다한 거래조건을 제시하면서 시장을 잠식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도매업체의 과열경쟁은 의약품 저가낙찰과 같은 비정상적 거래관행의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지난 2013년 제약협회는 도매상들이 병원에 납품할 의약품의 입찰 결과 1원으로 낙찰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자 저가 낙찰 도매상들에 의약품을 공급하지 않겠다고 선전포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약협회의 행위는 의약품 공급 여부와 가격결정에 관여하는 것”이라며 과징금 5억원을 부과하면서 체면을 구겼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한정된 시장에서 제약사와 도매업체의 난립으로 집단으로 서로 헐뜯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어 상생을 위한 해법 모색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연도별 의약품 제조업체·도매업체 수(자료: 식품의약품안전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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