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준기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화법은 언제나 간결하다. 불필요한 수식어나 난해한 용어는 가급적 피한다. 그래서인지 한때 ‘의도된 화법은 아닐까’ ‘밑천이 드러날까 봐 말을 아끼는 건 아닐까’란 우스갯소리도 돌았다.
어떨 땐 그 간결함이 무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은 유명해진 “대전은요?”, “저를 도운 게 죄인가요?”란 발언은 짧지만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 그 여파인지 기자들은 대통령의 발언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해 기사를 쓰곤 했다.
때론 침묵으로 메시지를 던진다. 이후 사과는 했지만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추행 파문과 부실 인사검증으로 인한 장·차관 낙마사태 때는 꽤 오랜 기간 발언을 삼갔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의 침묵은 그것만으로도 의미 전달이 가능하다”고 했다.
밀어붙여야 할 일이 생기면 과격한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규제들을 한꺼번에 단두대에 올려 처리할 것”이란 표현이 대표적이다. “규제 철폐라는 강력한 의지를 담은 것”(청와대 관계자)이라곤 하지만 섬뜩하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과거에도 “암덩어리” “진돗개는 한번 물면 살점이 완전히 뜯어져”라는 표현도 가감 없이 써왔다.
이 때문인지 박 대통령은 예전부터 발언 한마디로 각종 논란거리를 쉽게 해결하는 능력을 발휘하곤 했다. “대전은요”라는 발언 이후 수세에 몰렸던 격전지에서 승기를 잡고 “저를 도운 게 죄인가요”라는 말로 쉽게 친박계 인사들의 결집을 도왔다. 이명박 정부가 ‘행정중심복합도시’(현 세종시) 건설에 제동을 걸었을 땐 “국민과의 약속”이라며 찬물을 끼얹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1일 ‘정윤회 동향 문건’ 파동이 일자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면서 “근거 없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7일 새누리당 지도부와의 오찬 자리에서는 정윤회 문건을 거듭 ‘찌라시’로 규정하고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과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현 정부 핵심요직에 있던 인사들의 폭로를 ‘일방적 주장’으로 치부했다.
더 나아가 9일에는 국무위원의 직책과 언행에 대해 각별한 주의를 당부해 정윤회 문건 파동 과정에서 불거진 유 전 장관의 폭로를 정면 겨냥한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과거와 달리 정윤회 파동에는 불과 열흘 만에 무려 3번에 걸쳐 반박과 설명, 당부 등을 전달한 셈이 됐다. 그만큼 ‘정윤회 문건’ 파동의 여파는 상당하다고 대통령 스스로도 느끼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꼬일 때로 꼬인 정국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고민이 깊다는 메시지로 들리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