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불리는 단순한 레스토랑이 아니었다. 세계적인 권위의 미슐랭 가이드로부터 별 세 개를 받은 최고였다. 무엇보다 25년간 엘불리의 주방을 지휘한 페란 아드리아의 독창적인 레시피로 요리를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래도 시작은 초라했다. 1961년 카탈루냐주 크레우스 지역 외딴 해변에서 관광객들을 상대로 장사를 했다. 엘불리는 카탈루냐어로 불독이란 뜻이다.
정해진 메뉴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50여명 요리사는 아드리아의 지휘 아래서 완두콩 민트 수프, 2m 파마산 스파게티, 다시마와 말차 캐러멜 등 매년 새롭게 만든 요리를 내놓는다. 아드리아는 2007년 요리사로서는 처음으로 독일의 카셀 도쿠멘타 현대미술전에 아티스트 자격으로 초청을 받기도 했다. 식사 자체가 예술적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는 이유에서다. 그런 엘불리가 문을 닫겠다고 하자 이목이 쏠린 건 당연한 일이었다.
책은 엘불리에서 실험된 파격적인 레시피에 관해 철학적·미학적 고찰을 담았다. 프랑스의 수필가로 마르크스주의자이며 급진적 철학자인 저자가 순전히 미식가로서 ‘요리는 예술이 될 수 있는지’ ‘그렇다면 그 예술의 본질이 뭔지’ 등에 대해 묻고 답했다.
이를 위해 저자는 프랑스와 유럽의 요리역사, 예술사, 미학사, 먹는다는 행위 혹은 맛에 대한 철학자들의 생각들을 다채롭게 훑어간다. 그러곤 아드리아의 요리를 ‘예술작품’이라고 분명히 못 받은 뒤, 한 창조물이 예술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독창성, 보편성, 재현, 오성의 확장 등의 요구를 만족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매년 250만여명이 예약을 시도해 8000여명만 식사기회를 얻는 엘불리. 1996년 몇개월 대기 끝에 엘불리에서 처음 식사를 한 저자는 이후 15여년간 엘불리의 예찬자가 됐다. 정확하게는 아드리아의 요리철학에 매료된 것이다. 아드리아가 “서구 요리의 전통적인 형태를 망각하고 파괴하고 버리지 않고서도 무한한 창조가 가능한 세계를 열었다”고 했다.
엘불리가 전통을 답습하지 않는 건 요리가 아닌 감동을 선사하기 위해서다. 결국 엘불리는 2011년부터 휴업 중이다. 또 다른 감동을 낳을 ‘요리연구’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