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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로 멍든 체육계]①어느 대학 체육강사의 `충격 고백`

김도년 기자I 2012.04.27 07:50:23

초임 강사시절 논문대필 제안 거절..`10년째 보따리 장사`
체육계 집단주의 문화 교수직·대필 알선으로 진화

[이데일리 김도년 김상윤 기자]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대학에서 체육강사를 하는 이준희(가명·41)씨를 인터뷰하기는 쉽지 않았다. 학계에서 매장될 것이 두려웠는지 수차례의 설득 끝에 인터뷰가 성사됐다. 그가 어느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지, 그의 학위 논문이 무엇인지 등 그를 알아볼 수 있는 모든 개인 정보를 노출하기도 꺼려했다. 그러나 일단 인터뷰가 시작되자 응어리진 불만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2001년 박사학위를 받고 강사 생활을 시작할 때였습니다. 당시 한 교수로부터 전화가 오더군요. 논문대필 제안이었습니다. 지인이 박사학위 논문을 써야 하는데 선수출신이라 쓰기가 어렵다고 했습니다. 당시 저는 망설였지만 그 교수의 제안을 끝내 거절했습니다. 이후로도 논문대필 제안이 들어왔지만 모두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저는 10여년째 보따리 장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암암리에 이뤄지는 운동선수 출신들의 논문대필, 표절 관행은 체육학계의 고질적인 병폐입니다"

이씨는 현재 서울 시내 3개 대학에서 교양체육 과목을 맡고 있다. 가끔 지방대에도 출강을 한다. 이 학교 저 학교를 기웃거리며 수업을 하다보면 금세 하루가 다 간다. 한달에 들어오는 소득은 150만원을 넘지 못한다. 시간과 돈을 개인 연구에 투자하기는커녕 매달 생활비로도 빠듯하다.

결혼한지 7년이 넘었지만 저축은커녕 애들 유치원 보내기도 버겁다. 맞벌이가 아니었다면 벌써 보따리상을 접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애들이 가끔 아빠 직업을 물을때면 더욱 가슴이 저려 온다고 고백했다. 당당하게 아빠 직업은 `대학교수`라고 말하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런 그에게 문대성 새누리당 국회의원 당선자의 논문 표절 이야기를 꺼냈다. 아니나 다를까. 흥분을 감추지 못한 그는 "체육학은 의학, 역학, 심리학, 사회학 등 여러 인문·자연과학과 신체 활동이 한 데 어우러진 종합 학문"이라며 "단순히 운동을 잘한다고 강단에 설 수 있는 만만한 학문이 아니다"라고 언성을 높였다. 이어 "체육학과 교수 자리가 스포츠스타들의 전관예우 자리 정도로 인식되고 있으니……"라며 혀를 끌끌 찼다.

초임 강사시절 논문대필 제안을 받은 것 외에도 그를 열받게 한 사건은 또 있었다. 국가대표 축구선수 박모씨가 병역 연기를 위해 대학원에 진학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강사직을 그만두고 김밥장사라도 할까 생각했단다.

"그 당시엔 체육강사를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심적으로 힘든 시기였는데 박모 선수가 군대가기 싫어서 대학원을 온다고하니 정말 힘이 많이 빠졌다"며 "대학원이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 석사논문을 과연 자기 힘으로 쓸수 있을지도 의문"이라며 불쾌한 속내를 감추지 못했다.

이씨는 이 모든 문제의 근원에 체육계 특유의 끈적끈적한(?) 인맥이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체육대학들은 전통적으로 선·후배간의 관계가 끈끈하고 집단주의적인 문화가 강한 편"이라며 "이런 문화가 개인적 친분 선에서만 그치면 모르겠지만 교수직, 논문대필 알선 등 기형적 형태로 진화해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또 "동아대 등 유독 특정 대학에서 스포츠스타들의 논문 표절 문제가 집중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도 결국 체육계 인맥이 어디에 얼마나 포진해 있느냐의 차이"란 설명도 덧붙였다.

이씨와의 인터뷰를 끝내며 돌아서는 길. 그는 자신의 실명과 신상정보를 밝히지 말아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자기 입으로도 비판했지만 체육계와 학계의 강고한 집단주의 속에서 자신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최소한의 학자적 양심마저 지키기 어려운 현장. 문대성 당선자의 논문 표절 사태도 이런 현실 속에서 태어난 괴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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