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서울 상암동 팬택계열 사옥에서 열린 팬택-팬택앤큐리텔 합병 발표회에서 박병엽 팬택계열 부회장이 한 이야기이다. 박 부회장은 이날 작심한 듯 그 동안의 마음고생을 이야기했다.
3년전은 팬택계열이 존폐의 기로에 섰던 시점이다. 1991년 박 부회장이 6명의 직원으로 시작한 팬택계열은 이후 고도성장을 이뤄냈다. 지난 2001년 현대전자에서 분사한 현대큐리텔을 인수해 팬택앤큐리텔로 편입시켰다. 2005년에는 SK텔레콤의 단말기 자회사인 SK텔레텍을 인수해 팬택과 합병시킨 바 있다.
한때 국내 휴대전화 시장에서 삼성전자에 이어 2위 자리에 올라서기도 했다. 하지만 고도성장에 따른 성장통을 이겨내지 못한 팬택계열은 결국 지난 2006년말 기업개선작업을 신청했다. 박 부회장의 입장도 `잘 나가는` 기업의 오너에서 하루아침에 미래를 예측할 수 없게 바뀌고 말았다.
하지만 박 부회장의 이후 행동은 비슷한 처지의 다른 기업들과는 달랐다. 박 부회장은 회사가 유동성을 위기를 맞자 자신의 팬택계열 지분 모두를 포기하면서 채권단을 설득했다. 당시 박 부회장의 지분은 28%. 시가로 4000억원 이상으로 평가됐다. 채권단의 출자전환과 채무조정 등의 조치는 이러한 박 부회장의 희생이 채권단에 신뢰를 준 덕분이다. 실제로 박 부회장의 현재 재산은 한 기업의 최고경영자라고 하기 힘들 정도로 적은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분만 포기한 것이 아니다. 개인생활과 휴식도 포기했다. 박 부회장은 월요일 아침이면 경영점검회의를 위해 새벽 5시30분에는 출근한다. 토요일과 일요일도 따로 없다. 지난 추석 연휴 기간에도 박 부회장은 추석 당일인 토요일과 일요일을 제외하고 모두 출근했다. 이틀을 쉰 것은 자신이 출근하면 임직원들도 출근하기 때문에 쉰 것이다.
박 부회장의 열정과 자신의 회사를 회생시키겠다는 책임감은 퀄컴의 출자전환, 채권단의 추가 출자전환을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됐다. 채권단이 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간 팬택계열의 CEO를 박 부회장이 계속 맡게 하는 것도 이같은 박 부회장의 희생이 이끌어낸 신뢰가 밑바탕이 됐다.
박 부회장은 지난 16일 또다른 승부수를 던졌다. 팬택과 팬택계열의 합병 추진이 바로 그것. 박 부회장은 이날 발표회에서 "만약 합병에 실패한다면 팬택계열 자체가 위기를 맞을 것"이라며 "합병이 안되면 책임지고 회사를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배수진`인 셈이다.
박 부회장은 합병을 통한 시너지효과로 오는 2013년 매출액 5조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박 부회장의 희생이 이같은 목표를 이뤄낼지에 시장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