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연호 기자] 행정안전부(이하 행안부) 출입 기자인 필자는 이달 초 정부세종청사 기자실에서 타사 기자들과 함께 행안부 간부들과 다과를 곁들인 신년 인사를 나눴다. 연초인 만큼 행안부 간부들과 기자단 사이에 새해 덕담과 최근의 근황 등이 오갔다. 그러다 행안부의 광범위한 업무 범위에 화제가 이르렀다. 화제가 이에 미치자 간부들과 기자들 모두 울상이 됐다.
행안부는 크게 국가의 행정 일반을 담당하며 국정 운영 지원, 정부 혁신 및 조직, 지방자치 행정 지원, 재난 안전 관리를 소관 업무로 한다. 다만 소관이 없는 업무도 행안부가 맡는다. 정부조직법 제34조(행정안전부) 2항은 ‘국가의 행정 사무로서 다른 중앙 행정기관의 소관에 속하지 아니하는 사무는 행정안전부 장관이 이를 처리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난해 요소수 대란과 빈대 출몰 초기 행안부가 앞장선 이유가 이 때문이기도 하다. 필자는 이에 “미확인 비행물체(UFO·Unidentified Flying Object)가 나타나도 행안부 소관이라면서요?”라고 고기동 행안부 차관에게 물었다. 그러자 고 차관은 웃으며 “그것도 우리 소관일 걸요”라며 휴대폰을 보더니 곧 ‘맞다’는 대답을 내놨다.
게다가 행안부는 경찰청과 소방청을 외청으로 두고 있고 새마을금고중앙회 관리·감독 권한도 갖는다. 행안부는 전신이 내무부와 총무처인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전통적 가정에서의 엄마 역할을 자처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신경쓸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언론에 범부처 합동 발표 자료를 배포하면 자료 하단의 담당자 연락처에 행안부 공무원이 빠지는 일은 사실상 거의 없다.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행안부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행안부 공무원들이 늘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이유는 우리 주변의 재난은 예고 없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에 기자들과 간부들이 저녁 자리에서 만나 간단히 술이라도 하는 날엔 ‘부디 오늘 밤은 무사하길 바란다’는 내용의 건배사가 따라붙기 일쑤다. 안 그래도 업무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 바쁜 행안부인데 재난이 터지면 행안부는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다. 작년 하반기만 봐도 오송지하차도 참사, 산사태, ‘새만금 잼버리’ 파행, 태풍, 지진이라는 재난이 발생했다. 여기에 재난으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새마을금고 뱅크런(대규모 자금 인출 사태)과 행정 전산망 마비 사태까지 터졌다. 필자가 그간 수많은 부처를 출입해 봤지만 행안부만큼 많은 ‘즉시’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곳은 드물다. 매일 휴대폰 문자 메시지에 ‘즉시’라는 단어가 뜨면 긴장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정부는 각종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인재라는 비판에 직면했고 그에 맞춰 뒤늦은 대책을 내놓길 반복해 왔다. 이젠 시행착오를 충분히 겪었다. 행안부는 올해 전체 사업 예산 중 36.3%인 1조9184억원을 재난 안전 분야에 투입한다. 이는 정부안 대비 245억원 증가한 것으로 행안부는 이를 통해 일상생활 속 사고에서부터 대규모 자연 재난에 이르기까지 국민을 더욱 폭넓게 보호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더욱 반가운 것은 지난 2022년 10월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정부의 재난 안전 관리에 대한 경각심이 한층 높아진 듯하다는 점이다. 행안부는 틈만 나면 사회 곳곳을 대상으로 점검에 나선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재난은 방심을 먹고 사는 괴물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제발 행안부가 바쁘지 않고 편해졌으면 좋겠다. 행안부가 편해야 나라가 편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