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장 근무를 하면 휴가를 제공한다고 하는데,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전체 근무 시간만 더 늘어날 거 같아요. 초과근로에 대한 보상이 가장 중요한데, 이에 대한 보상 체계가 잘 정착돼야 할 것 같아요”-30대 광고업체 근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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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사업주가 마음대로 일주일에 69시간까지 일을 시킬 수 없도록,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선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으로 합의해야 하도록 했다. 근로자가 원하지 않으면 주 최대 69시간제를 할 수 없도록 했는데도, 왜 이렇게 반발 여론이 심한 걸까.
◇69시간제 ‘부익부 빈익빈’…中企 ‘결사반대’ vs 대기업 ‘무관심’
이데일리가 노동 현장에서 만난 MZ세대 근로자들은 여전히 근로시간 제도개편안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다. 취업 포털사이트 ‘사람인’이 지난달 14일부터 28일까지 2030세대 회원 303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개편안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답한 비율이 93.1%(2819명)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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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 근로자의 부정적 인식의 근간에는 개편안이 사용자(사업주)에게만 유리한 정책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특히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근로자일수록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다.
외국계 중소기업에 다니는 30대 영업사원 A씨는 “야근이 일상이었지만 주52시간제가 시행되면서 특정 시간이 되면 컴퓨터가 자동으로 꺼진다든지 근무를 강제하는 문화가 없어졌다”며 “주52시간제에서 월말에는 조금 더 일찍 퇴근할 수 있었는데 69시간제가 도입되면 악용될 소지가 높다”고 전했다.
게임회사에 다니는 20대 후반 여성 B씨는 “업데이트 등의 이슈가 있을 때 늦은 밤에 퇴근하는 일이 잦은데 주 52시간 내에서 해결이 가능하다”며 “69시간으로 늘어나면 늦게 퇴근하는 날이 더 늘어날 것 같아 결사 반대하는 입장”이라고 피력했다.
반면 대기업 근로자들은 개편안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미 주52시간제가 정착했고, 포괄임금제도 폐지돼 일한 만큼 수당이나 대체 휴무도 문제 없이 지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IT 대기업에 다니는 30대 여성 C씨는 “근무시간을 엄격하게 관리할 뿐만 아니라 초과 수당도 분(分)단위로 지급하다 보니 별로 동요는 없다”며 “이번 달 법적으로 근무가 가능한 시간을 중간에 알려주고 휴식을 취하라는 알림도 보낸다.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하기 전에 PC가 강제로 꺼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현장서 여전히 힘없는 근로자들…“근로자대표제 개선부터”
사실 주 최대 69시간제는 사용자가 마음대로 도입할 수 없도록 설계했다. ‘주’ 단위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월’, ‘분기’, ‘반기’, ‘연’ 단위 등으로 바꿔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가 필수기 때문이다. 회사에 노조가 있다면 노조위원장이, 노조가 없다면 근로자대표를 선출해서 합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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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사용자가 근로자대표를 입맛대로 임명하고 합의를 할 수도 있는 셈이다. 노조의 힘이 강한 대기업에서 개편안에 큰 관심이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노조가 있더라도 비주류 근로자라면 자기가 원하는 선택지를 고를 힘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에 전문가들은 우선 노동 현장에서 근로자들이 사용자가 대등한 위치에서 합의할 수 있는 시스템이 근로시간 제도를 개편하기 전에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부도 근로자대표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선출방식을 명문화하는 등 개선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주 최대 69시간제가 재검토에 들어가면서 근로자대표제 개선작업까지 멈춘 상태다.
고용부 관계자는 “근로자대표제는 근로시간 제도개편안을 보완하는 제도이다 보니, 개편안과 같이 추진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제도가 들어오면 선출방식 등 규정되고 사용자의 개입이나 방해 금지 방식 등이 규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중요한 건 회사의 잘못된 인사노무관리를 사내에서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고, 근로자대표제 강화는 그 해법이 될 수 있다”며 “정부가 민주적으로 근로자대표를 선출할 방법을 마련하면, 노사는 자율적으로 근로시간을 결정하고, 이행 여부를 감시할 수 있는 체계가 갖춰지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