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 부담에 낮아지는 주가…힘받는 "상속세 폐지" 목소리

안혜신 기자I 2022.12.22 06:07:00

OECD 회원국 중 두 번째 높은 상속세율
대주주 상속세 부담 줄이기 위해 주가 낮게 유지 경향
"상속세 폐지해 자본 축적 촉진하고 소득세 누진율 높여야"

[이데일리 안혜신 기자] 우리나라는 30억원 이상을 상속할 경우 최고세율 50%가 적용된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여기에 기업 경영권을 포함한 주식 등에 대해서는 추가로 가산한다. 따라서 대부분 기업의 경영승계에서 부과되는 실질 상속세율은 60% 안팎에 이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경영권을 가진 대주주들은 향후 내야 할 세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주가를 낮게 유지하려고 애쓰기도 한다. 주가가 오른 만큼 납부해야 할 상속세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최근 고(故) 김정주 넥슨 창업자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고 김 창업주가 남긴 10조원대 재산에는 총 65%의 세율이 적용됐다. 이에 따라 고인의 아내와 두 딸이 내야 할 상속세는 6조원대가 됐다. 앞서 삼성 유족들 역시 고 이건희 회장 유산 상속 과정에서 12조원의 상속세가 부과됐다.

상속세는 쉽게 건드리기 어려운 영역 중 하나다. ‘부의 대물림’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 때문이다. 물려받은 재산이 많은 만큼 많이 내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다른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상속세가 높은 수준으로 유지될 경우 경영권을 가진 대주주가 이를 낮추기 위해 주가 부양에 나서지 않으면서 기업 주가를 실제보다 누르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상속·증여세는 상속·증여할 재산의 평가 금액에 세율을 곱해서 산출한다. 고정적인 비율인 세율을 낮출 방법이 없으니 세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인위적으로 조정 가능한 주식 평가 금액을 낮추는 방법을 활용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렇게 되면 대주주가 상장 기업 주식의 주가를 억지로 누르는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고착화될 수밖에 없게 된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과거 상속 이슈로 인해 특히 비상장사의 경우 가액을 낮춰 상속하는 경우가 상당했다”면서 “우리나라 상속세율은 사회적 책임 비용 등으로 높아졌는데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측면에서 본다면 상속세에 대한 합리적인 세율 조정 논의가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국내 경제학자 중 절반에 가까운 수가 상속세 폐지에 찬성한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한국경제학회가 지난 9~10월 경제학자 3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상속세 관련 설문조사에서 ‘소득재분배 차원에서 상속·증여세 부담을 늘려야 한다는 것에 어느 정도 동의하십니까?’란 질문에 ‘동의하지 않음’이 절반에 가까운 47%를 차지했다. ‘강하게 동의하지 않음’도 33%를 차지했다. 반면 ‘강하게 동의’는 3%, ‘동의함’은 9%에 그쳤다.

‘동의하지 않음’을 선택한 허석균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소득재분배를 위한 목적이라면 상속·증여세가 아니라 소득세의 누진도를 높이는 방식이 바람직할 것”이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득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정부가 소득세 강화에 따른 조세저항에 대해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조장옥 서강대 명예교수 역시 “상속은 재산을 축적하는 강한 유인 가운데 하나”라면서 “따라서 상속세를 폐지해 자본축적을 촉진하고 그 대신 소득세의 누진율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여전히 상속세 폐지에 부정적인 의견도 상당하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상속 및 증여는 수혜자 입장에서 불로소득이며 이러한 불로소득으로 인해 사회의 소득과 부가 일부 계층에 집중된다면 그 사회는 결코 유지될 수 없다”면서 “건전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유지하고 싶다면 어느 나라이든 유의미한 수준의 상속 및 증여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