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은행 없는 충청…설립 성공 여부에 지역민·금융권 '촉각'

박진환 기자I 2021.09.14 06:30:00

외환위기 계기 충청은행·충북은행 1998년·1999년 문 닫아
지역금융낙후·지역자금 역외유출·수도권집중 등 문제 속출
충남도, 대전·세종·충북과 공조해 지방은행 설립 본격 추진
자본금 마련 및 기존 은행들과 차별성·경쟁력 확보 등 관건

은행구조조정으로 1998년 퇴출된 충청은행.
사진=연합뉴스 제공


[대전·홍성=이데일리 박진환 기자] 최근 충남도를 중심으로 충청권 광역지방자치단체들이 지방은행 설립을 추진 중인 가운데 성공 여부를 놓고, 지역주민들은 물론 시중은행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대전시와 충남도 등의 충청권 시·도의 금고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하나은행과 NH농협은행 등 시중은행들은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간 대전시와 충남도 등 지자체와 지역주민들은 “IMF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충청권에 지방은행이 사라진 후 여러 시중은행이 그 역할을 수행한다고 약속했지만 중소·벤처기업와 소상공인을 위한 대출이나 서민금융에는 소극적으로 임해 불만이 쌓이고 있다”며 지방은행 설립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 중이다.

1999년 2월 2일 금감위로부터 강제 합병명령 결정사실을 통보받은 충북은행.
사진=연합뉴스 제공


한국은행, 충남도, 대전시, 세종시, 충북도 등에 따르면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1998년과 1999년 대전·충남을 기반으로 하는 충청은행과 충북의 충북은행 등 충청권 지방은행들이 차례로 문을 닫았다. 그 결과, 현재 지방은행이 없는 시·도는 수도권을 제외한 대전시와 세종시, 충남도, 충북도 등 충청권 4개 시·도와 강원도가 유일하다. 반면 지방은행이 있는 부산과 대구, 경남, 광주, 전북, 제주 등 6곳의 지방은행의 총자산은 233조 5900억원에 달한다. 충청권에서는 지방은행 부재로 △지역 금융경제 낙후 △지역 자금 역외유출 △금융의 수도권 집중에 따른 금융 양극화 심화 등을 심각한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2019년 기준 충남도의 지역내총생산(GRDP)은 114조 6419억원으로 전국 3위에 올랐지만 역외유출 규모는 25조 477억원으로 전국 1위라는 오명을 썼다. 충남에 머물며 지역민들에게 분배돼 지역경제 발전에 기여해야 할 자금이 지속적·대규모로 유출되고 있는 셈이다. 지역별 금융권의 기업대출도 충청권이 소외를 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2018년 기준 충남의 사업체 수는 17만 2242개로 전국 4위인 반면 총대출금액은 20조 1980억원으로 전국 7위에 머물렀다. 지방은행에 비해 시중은행의 과도한 이익구조도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해 전국의 6개 지방은행의 당기순이익은 1708억원으로 2015년과 비교해 11.2% 증가에 그쳤다. 반면 KB, 신한, 하나, 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은 같은 기간 1조 193억원에서 1조 9373억원으로 90.1% 급증했다.

올해 7월 26일 충청권 지방은행 설립추진 연구단이 발족한 가운데 연구단 위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충남도 제공


충청권에 거주하는 지역주민들도 과반수 이상이 지방은행 설립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충남도가 지난 6월 대전·세종·충남·충북 충청권 4개 시·도에 거주하는 만 19세 이상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8.4%가 ‘충청권 지방은행 설립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필요하다’고 답한 응답자들은 필요한 이유로 ‘소상공인·서민 계층 지원(33.7%)’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에 충남도는 지난달 ‘충청권 지방은행 설립 추진 연구지원단’을 발족하고, 지방은행 설립 논리 개발과 지역간 정보 분석 등 충청권 지방은행 설립에 필요한 연구 분석을 수행 중이다. 이어 지방은행 설립을 충청권행정협의회 의제로 상정해 공동 협약을 체결하고, 내년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에 주요 정당과 후보의 공약으로 포함시킨다는 구상이다. 충남도가 구상하는 지방은행은 인터넷은행을 기반으로 최소한의 지점 운영을 결합한 복합형태이다. 충청권 4개 시·도와 지역주민들, 빅테크와 대기업, 금융회사 등을 대주주로 참여시켜 2000억원 이상 1조원 상당의 자본금을 마련한다는 목표이다. 이 구상안은 현재 추진 중인 충청권 광역생활경제권(메가시티) 조성사업과 연계할 예정이다. 13일 충남 예산 스플라스리솜에서 열린 충남도 제2차 비상경제상황 점검 회의에서 양승조 충남지사는 “1998년 충청은행, 1999년 충북은행 퇴출 이후 충청권에는 지역경제와 상생하고 지역민과 동행하는 지방은행이 없다. 이로 인해 지역자본은 외부로 유출되고 지역민의 금융서비스 접근성은 떨어졌다”면서 “무엇보다 자영업자,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이 금융 활동에 많은 제약이 발생하고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이제 충청에도 지역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지지할 든든한 버팀목이 돼 줄 향토금융이 필요하다”며 “충남혁신도시, 서해선 KTX 직결, 충남민항 건설을 잇는 민선 7기의 다음 대표사업으로 충청권 지방은행을 추진해 현 비상경제상황의 돌파구를 마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승조 충남도지사가 7월 23일 대전세종연구원에서 열린 충청권 광역생활경제권 전략수립 연구용역 중간보고회에 참석해 충청권 지방은행 설립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사진=충남도 제공


그러나 충남도에 앞서 대전시가 2012년에도 지방은행 설립을 추진했지만 실패한 경험이 있고, 자본금 확충과 은행의 경쟁력 확보 등 앞으로 넘어야 할 과제도 산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염홍철 전 대전시장은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충청, 충북, 강원, 경기은행 등이 퇴출됐는데 수도권을 제외하면 충청권과 강원도 등 중부권만 지방은행이 없게 됐다”고 전제한 뒤 “문제는 이로 인해 중소기업 대출에 대한 불이익 및 자금 역외유출 문제가 상존한다. 지역의 기업 대출, 지역자금 유출, 지역금융 낙후 등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증가하는 충청권 금융수요를 볼 때 이에 대비하는 차원에서도 지방은행이 필요하다”며 지방은행 설립을 추진했지만 실패했다. 시중은행들의 반발도 넘어야할 산이다. 이 중 대전과 충남, 세종에 가장 많은 지점을 보유한 하나은행은 충청권 지방은행 설립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전체 지점의 13.4%가 충청권에 있는 등 타 은행에 비해 하나은행은 충청권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하나은행은 1998년 충청은행이 사라진 후 이 은행의 자산과 조직을 모두 인수한 뒤 충청권에서 활발한 영업을 해오고 있다. 2019년에는 대전시 프로축구단인 대전시티즌을 인수해 대전하나시티즌으로 재창단하는 등 충청권에 남다른 공을 들이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전국이 아닌 충청권만을 영업권역으로 하는 은행 설립에 대기업이나 핀테크 기업들이 관심을 보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한 뒤 “무엇보다 신규 고객을 일정 수준 이상 확보해야 한다는 점에서 기존 은행과 인터넷은행과의 차별성 확보가 쉽지 않은 문제”라며 지방은행 설립에 부정적인 견해를 감추지 못했다. 이에 대해 충남도 관계자는 “우리가 구상하는 지방은행은 기존 은행이 경쟁상대가 아니며, 중소·벤처기업과 소상공인, 저신용자 등 타켓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영역”이라며 “연구 용역에서 차별성과 경쟁력 확보를 위한 대안이 나올 것”이라고 전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