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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기간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생리학적인 변화는 심혈관계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보통 임산부는 비교적 젊고 건강한 여성으로 임신 전에 심혈관계의 특별한 이상이 없었던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산전 및 임신 중 심혈관계에 대한 진찰이 소홀해지기 쉬운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산모는 배가 불러오는 임신 후반기에 피로감, 운동 능력의 감소, 호흡곤란 등을 호소하기 때문에 위의 환자처럼 심부전 증상을 임신에 대한 반응으로 생각하고 진료를 받으러 오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임신 중에는 혈액량이 상승하면서 심박출량이 보통 30~50% 정도 상승한다. 이러한 심박출량의 상승은 기존에 심혈관계 질환이 있는 여성에게 심부전을 나타낼 수 있다. 또한 임신은 심혈관계 질환이 없던 여성에게서 새로운 심혈관계 질환을 야기할 수도 있다. 위 산모는 기저 질환이 없던 분이지만 주산기 심근병증, 즉 임신 기간 중 마지막 1개월 및 분만 후 5개월 이내에 나타나는 드물지만 심각한 임신의 합병증으로 진단됐다.
주산기 심근병증은 확장성 심근병증과 형태적으로 유사하나 분만 시기의 가임기의 여성에게 나타나므로 서로 다른 질병으로 분류된다. 주산기 심근병증의 위험인자로는 다산, 모성의 연령, 고혈압, 유전적 요인 등이 있다. 병의 원인은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으나 임신으로 인한 모체 면역체계의 변화와 혈역학적 변화의 상호관계가 중요한 요인 중 하나로 여겨진다. 이러한 주산기 심근병증은 자연 회복이 가능한 대표적인 심근병증이다.
심부전 약물치료를 하면서 환자를 잘 살피면 처음 6개월 이내에 50% 정도에서 심장 기능이 정상화된다. 이는 주산기 심근병증의 경과가 특이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질환이 대부분 발병 초기에 발견이 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일 수 있다. 그러나 발병 후 6개월 이상 지나 진단될 경우는 자연 회복의 가능성이 매우 낮으며 초기에 심한 좌심실 기능의 저하가 발생하게 된다. 더불어 좌심실 확장 기말 구경이 60mm 이상이면 자연 회복 가능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충분한 치료에도 불구하고 증상이 지속되거나 강심제 투여가 필요하면 심장 이식을 고려하기도 한다. 주산기 심근병증 환자의 좌심실 수축기 기능이 정상화되지 않는 경우에는 다시 임신하는 것은 금해야 하며, 수축기 기능이 정상화된 후에는 임신 및 분만이 가능하나 세밀한 관찰이 필요하고 심부전의 재발 우려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앞선 사례의 산모는 중환자실에서 좌심실 부전과 폐부종 집중 치료를 받고 한달 후, 호전된 상태로 사랑하는 아이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산모의 심기능은 6개월 내 바로 정상화 되지는 못하였지만 다행히 1년 정도 후 거의 정상에 가까운 심기능으로까지 회복되어 현재는 7살 아이의 엄마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환자는 유전자 검사상 TTN 이라는 심근 병증 관련 유전자를 가지고 있었으며 투병 중 매우 심한 좌심실 기능저하를 보였기 때문에 약은 중단없이 지속해서 복용하고, 재임신은 하지 않기로 했다.
다자녀 가구를 계획했던 환자로서 아이가 한명이라 안타까움이 없진 않았지만 환자 스스로 한 명의 아이라도 건강하게 키울 수 있음에 감사해 하고 있다. 아이의 임신과 출산은 많은 부부들에게 어찌 보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지만, 평범하게 임신과 출산이 이루어 지는 것이 매우 감사한 일이 될 수 있다는 걸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임신 중에 정상적으로 일어나는 생리학적 변화가 심장에 미치는 영향을 주시하고 지속적인 관리를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게 산모들은 몸에 이상이 생겼을 경우,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다가 병원에 오기 때문에 병을 진찰하는 데에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은데, 적절한 시기에 증상이 있을 때 한번씩 병원에 방문해 보는 것이 필요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