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선택을 안하면 못 사니깐 마음이 너무 급해요. 한바퀴는 다 돌아보고 결정을 하고 싶은데 그사이에 다 팔리면 어떡하나 걱정돼요.”(이성희·53·서울)
|
정석호 ‘아트부산’ 실장은 16일 “워낙 최근 시장이 좋아서 잘 될거란 기대는 있었지만, 문을 열기도 전에 갤러리 부스들이 그림을 완판한 건 이례적”이라며 “코로나19로 억눌렸던 구매 욕구가 폭발한 것은 물론 시중에 풀린 유동성 자금이 부동산, 주식에 이어 미술품 투자로 유입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정 실장에 따르면 이번 ‘아트부산’은 VIP프리뷰를 포함해 4일간 총 관람객 수가 8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6만 3000명을 훌쩍 뛰어넘은 수치다. 추산 판매액 역시 350억원으로 개막전 예상 판매액 220억원을 웃돌 것으로 관측된다.
◇3040세대 젊은 컬렉터, 미술 시장 큰손 부상
이번 ‘아트부산’에는 특히 30~40대 젊은 컬렉터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생긴 다양한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조은혜 페레즈 프로젝트 디렉터는 “전에는 아트페어에 가도 항상 보는 소수의 중장년층 컬렉터들이 그림을 구매했는데 이번에는 새로운 얼굴들이 많아지면서 훨씬 활기가 돌았다”고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최근 미술 작품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30대 부부 오혜선(31)씨와 심효섭(34)씨는 일부러 ‘아트부산’을 보기 위해 서울에서 시간을 내 부산을 찾았다. 집 인테리어도 하고 투자도 할 겸 미술품 구매를 시작했다는 오 씨는 “옥션에서 인기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실제로 볼 수 있고, 전반적인 미술 시장 트렌드도 알수 있었다”며 “청담 지갤러리에 걸린 마이클 스코긴스의 작품을 사고 싶었는데 이미 완판됐다고 해 아쉬웠다”고 털어놨다.
|
작품도 다양해졌다. 아라리오갤러리가 선보인 장종완 작가의 작품은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은 젊은 컬렉터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곰이 절규하듯 풍경화를 찢어내리고 있는 작품 앞에 사진을 찍기 위해 사람들이 몰리기도 했다. 권오상 작가의 사진 조각 ‘비스듬히 기대있는 형태1’을 NFT(Non Fungible Token, 대체불가토큰) 형태로 판매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매년 유명 아트페어들을 다니며 미술품을 구매한다는 40대 정모 씨는 “최근 단색조 작품이 인기라고 하는데 현장에 와보니 꼭 그런 건 아니구나 느꼈다”며 “요즘엔 다양한 컬렉터들이 오는 만큼 화랑수도 많이 늘고 작품도 다양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
◇“수천만·수억원 호가 그림도 없어서 못 팔아”
첫날부터 국내외 유명 갤러리를 중심으로 수억원을 호가하는 그림들도 빠른 속도로 판매됐다. 최고 관심사 중 하나였던 16억 원의 최고가액 작품도 VIP프리뷰날 예약자가 나타났고 다음날 판매 완료됐다. 최고가액 작품은 런던의 갤러리 타데우스 로팍이 내놓은 독일 신표현주의 거장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Die Reihen geschlossen’으로 16억원대였다. 7억원대 독일 작가 다니엘 리히터의 2018년 대작 ‘Sick music’, 6억원대 영국 조각가 안토니 곰리 작품도 첫날 판매됐다.
80~90년대생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인 독일 베를린의 페레스 프로젝트는 수천~수억원대 전시작 16점을 VIP프리뷰날 모두 판매했다. 부스 앞에 걸린 아르헨티나 작가 애드 미놀리티의 ‘Cat with green alien’을 구매하러 프리뷰 당일 오후 방문한 한 남성은 “이미 판매 논의 중”이라는 갤러리 담당자의 말에 아쉽게 발걸음을 돌리기도 했다.
국제갤러리는 6억원이 넘는 추상화가 유영국 1978년작 ‘작품’, 단색화 거장 하종현의 3억원대 ‘접합’ 시리즈 2점, 1억5000만원이 넘는 스위스 작가 우고 론디노네 신작을 판매했다. 유영국의 작품을 구매하기 위해 본행사 첫날 대구에서 ‘아트부산’을 찾은 박소영(63)씨는 “작품 가격이 너무 많이 올라서 놀랐다”며 “작년 작가의 작품을 눈여겨 봤을 때보다 2배 이상 오른 것 같아서 고민이 되는데, 그새 또 팔릴까봐 어쩔 줄 모르겠다”고 조바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를 비롯해 작품을 구매하기 위해 몰린 컬렉터들은 서로 작품을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눈치 싸움을 펼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