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사람 막는 '담' 아닌, 소통의 '담'에서 지혜를 얻다

강경록 기자I 2020.03.20 05:00:00

경남 고성 학동마을 옛돌담길 나들이
400년 역사 지닌 학동마을
최씨가 학꿈 꾸고 터 잡은 집성촌
담장 돌 알알이 옛이야기 박힌듯
가난한 이에게 음식을 내준 구휼구

학동마을 돌담길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집 밖으로 나서기가 참 힘든 시기다. 코로나19가 전국을 휩쓸고 있어서다. 그렇다고 너무 위축될 필요는 없다. 감염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예방한다면 일상생활과 여행도 가능하다. 이번에 소개하는 곳은 경남 고성의 학림리 학동마을(등록문화재 제258호)이다. 전주 최씨 안렴사공파의 집성촌으로, 아름다운 옛 담장을 두르고 있는 시골마을이다. 오가는 사람이 적지만, 마을 안길의 돌담이 주변의 대숲과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정겨운 곳이다. 골목따라 이어진 황토빛 돌담길을 걷노라면, 마치 시간을 거슬러 가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학동마을 최필간 고택 대문간채


◇봄향기 가득한 고색창연한 돌담길을 걷다

고성 학동 마을 옛담장
이 마을의 유래부터 알아보자. 마을의 역사는 약 400년. 전주 최씨 입항조(마을에 처음 정착한 성씨의 조상)가 가솔을 이끌고 이곳에 자리 잡았다. 전해지는 이야기는 이렇다. 어느 날, 최씨는 학이 마을에 내려와 알을 품고 있는 꿈을 꾼다. 날이 밝아 그 마을을 찾았다. 산수가 수려하고 학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었다. 최씨는 이 땅을 명당이라 믿고 들어와 뿌리를 내렸다. 마을을 둘러보니, 명당처럼 보였다. 마을 뒤쪽으로 수태산이, 앞에는 좌이산이 솟아 있어 좌청룡 우백호 지세였다. 마을 옆으로는 학림천이 흘러 배산임수형 입지도 갖추고 있었다.

마을에는 볼만한 게 그리 많지는 않다. 돌담을 따라 제법 기품 있는 한옥이 몇 채 있는 정도. 그렇다고 마을 전체가 반듯하게 정비된 것도 아니다. 볼거리만을 찾자면 실망스러울 수 있다. 대신 시선을 낮추면 달라진다. 여유 있게 돌담을 따라 골목을 거닐다 보면 고색창연한 돌담과 어우러지는 농촌 마을의 푸근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마을에 들어서면, 돌담이 길 양옆으로 길게 늘어서 있다. 봄기운을 따라 황토빛 담장의 흙 내음이 물씬 풍겨 온다. 제법 높게 쌓은 좌우 담장은 지나간 일상을 묻어둔 듯 차곡차곡 정돈한 책장처럼 느껴진다. 기록되지 않은 옛이야기는 돌 속에 알알이 박혀 있고, 담장에 놓인 돌의 두께나 높이만큼 세월도 켜켜이 내려앉았다.

돌담길은 차 한 대가 겨우 지날 수 있는 너비. 아담한 마을을 보며 편안하고 느린 걸음으로 움직이기에 불편함은 없다. 마을 안 긴 돌담길을 걷는 맛이 제법 좋다. 천천히 걷다 보면 수백년을 거슬러 오르는 듯하다. 돌담에 서려 있는 옛이야기가 금방이라도 들리는 듯하다.

고성 학동 마을 옛담장


담장의 모습도 독특하다. 3~6㎝의 납작돌을 황토를 이겨 발라 층층이 쌓았다. 담과 돌은 흙이 서로 부둥켜 안은 듯 옹골차다. 이런 돌담이 2.3㎞에 달한다. 다른 마을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아름다움이다. 마을에 있는 모든 집의 담과 집이 앉은 기단, 그리고 텃밭을 두른 낮은 담도 모두 동일한 방식으로 정성스레 쌓았다.

담장 아래와 위도 조금 다른 방식이다. 아랫부분은 납작돌로만, 그 위로는 납작돌과 황토를 섞어 쌓아올렸다. 한여름 홍수와 폭우에 대비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바닥에 흐르는 물과 황토가 만나면 담장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다. 담장 위에는 넓적하고 큰 납작돌을 따로 얹었다. 쏟아지는 비로부터 담장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조상의 반짝이는 지혜로움이 돋보이는 담장이다.

학동마을 최필간고택 안채


◇돌담길 따라 옛 선인의 지혜와 기개를 보다

돌담길을 따라 걷는다. 골목 안쪽에는 ‘매사고택’(경남문화재 제178호)이 있다. 최영덕 고가라고도 불린다. 전형적인 남부지역 사대부 가옥이다. 현 소유주의 5대조인 매사(梅史) 최태순이 고종 6년에 지은 집이다. 안채, 사랑채, 익랑채, 곳간채, 대문채 등 다섯 동의 건물을 남북 일자형으로 지었다.

사랑채를 구경하고 안채로 들어서면 다시 담이 가로막고 있다. 안마당이 직접 노출되지 않도록 세워놓은 내외담이다. 내외담에는 세 개의 구멍이 있다. 안채 마당으로 들어와 구멍을 통해 사랑채를 살펴보면 사랑채 마루에 놓인 탁자가 보인다. 안채에서 사랑채를 살피기 위한 구멍이다. 담이란 나와 다른 사람을 가르기도 하지만, 서로가 정겹게 소통할 수 있도록 해주기도 한다. 학동마을의 담은 소통의 담인 셈이다.

이 담장에는 또 다른 담 구멍이 있다. ‘구휼구’(救恤口)라는 구멍이다. 매사고택 양쪽 담장에도 구멍이 하나씩 뚫려 있다. 이 구멍은 담장 밖에 사는 배고픈 사람들에게 음식을 내주거나 가난한 사람을 위해 곡식을 갖다 놓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졌다. 바깥사람들이 집안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배고픔을 달래라는 배려의 구멍이다. 마당에 있는 고택의 굴뚝은 배고픈 바깥사람들이 음식을 하는 불 연기가 보이지 않도록 담장보다 훨씬 낮게 만들었다.

서비 최우순의 우국충정을 기리기 위해 지은 사당 ‘서비정’


다시 돌담길로 들어선다. 최씨 종가를 둘러본 후 마을 끝에 있는 서비정도 둘러본다. 일제강점기의 우국지사 최우순(1832∼1911년)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외모로만 보면 사당보다는 멋들어진 정자에 가깝다. 최우순은 일곱살 때 이미 한시를 지어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할 정도로 빼어난 유학자였다. 을사늑약 체결 후 일본이 있는 동쪽이 싫어 원래 호였던 청사(晴沙)를 서비((西扉·서쪽의 사립문)라 고치고, 국권 회복을 위해 의병을 일으켜다.

당시 일제는 전국에 명망 높은 유림에게 ‘은사금’(恩賜金)을 줘 민심을 무마하려고 했다. 최우순 또한 은사금을 여러 차례 받으라고 강요받았지만, 완강하게 거부했다. 이에 일제는 헌병을 파견해 그를 강제 연행하려 했다. 최우순은 날이 밝으면 가겠다고 한 뒤 그날 밤 독약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911년 3월 19일이었다. 마을 앞 소방서 맞은편에는 서비 최우순 선생의 순의비가 있다.

대숲으로 둘러싸인 학동 마을 최씨 종가


◇여행팁= 한국관광공사는 코로나19에 대한 우려가 큰 상황에서 우리 국민들이 안전하게 여행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안전여행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여행 전 단계에서는 △대중교통보다는 개인 차량을 이용한 여행계획 수립 △사람이 덜 밀집한 여행장소 선정 △마스크, 휴대용 손세정제 등 준비 △개인용 휴대용 컵과 상비약(해열제·감기약 등) 준비 △여행지 폐쇄 여부 확인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한 확진환자 이동경로 확인 등이다. 여행 중에는 △적절한 휴식 △물을 자주 마시고 익히지 않은 음식 주의 △발열과 호흡기 증상 발생시 무리하지 말고 여행 중단 등의 내용을 담았다. 여행 후에는 △확진환자의 이동경로와 날짜가 겹칠 경우 발열과 호흡기 증상 발생 시 질병관리본부 콜센터(1339) 또는 관할 보건소에 상담 후 조치하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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