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가 대뜸 한 말이다. 김 교수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중앙은행 전문가다. 김 교수는 전 세계 경제를 주무르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에서 10년간(1996~1998년, 2003~2011년) 일했다. 지금도 미국 연준의 자문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고, 연준이 ‘돈을 뿌리는’ 극단적인 완화 정책을 취하며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도 모두 지켜봤다. 하지만 그는 중앙은행을 너무 믿지 말라고 했다.
“환자가 죽을 것 같으면 일단 뭐든지 해야 합니다. 일단 수술을 해야죠. 피를 닦는 것은 나중 일이고요. ”
김 교수가 보기엔 최근의 세계 경제는 ‘환자’ 상태다. 당장 수술이 필요하다. 최근 미국을 비롯해 유럽과 일본, 중국의 중앙은행이 경기 부양을 위해 완화적인 통화정책으로 돌아선 건 불가피한 일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은행이 미래를 대비하지 못한다는 게 김 교수의 주장이다. 2008년 위기 때도 미국 연준이 위기를 예상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금융위기 직전에 벤 버냉키 의장이 매주 회의를 열었어요. 뭔가 이상하다.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그 많은 경제학자들이 달라붙어서 데이터를 보고 연구한 건데, 위기가 온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위기의 조짐이 있었지만, 가령 주가폭락에 베팅하는 금융상품에 투자한 사람은 없었죠.”
불확실성의 시대는 곧 기회를 의미한다는 게 김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반도체 이후 우리경제의 성장을 이끌어나갈 주체가 없는 것이 문제”라면서 “지금은 뭐가 튈 지 아무도 모르는 시대지만, 그만큼 다양한 기회가 있다고 본다”고 했다.
이데일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위기의 진원지에서 바라본 김 교수와 지난달 인터뷰를 진행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가 다시 엄습하고 있다. 김 교수는 현재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2008 금융위기 전, 그들도 감지했다”
-2000년대 중반 연준의 회의 풍경은 어땠나.
△불안하긴 한데, 명확히 잘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데이터를 아무리 봐도 잘 몰랐고, 위기를 진단할 수 있는 적당한 데이터도 당시에는 없었다. 주택시장과 기업이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당시 연방공개시장위원회 위원들도 잘 몰랐다.
-지금 글로벌 경제는 어떻다고 보나.
△중증은 아니다. 그런데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못 보지 않았나. 지금도 그렇다. 가령 중국만 해도 그렇다. 외부에서 중국을 보는 학자들은 1990년대 말부터 내년에 위기가 터진다고 했다. 그런데 아직 안 터졌다. 그게 터질지 안 터질지. 올해 터질지 내년일지. 어디에서 터질지 모르는 거다. 세계경제도 그렇다. 정부는 위기가 터졌을 때 남보다 빠르게 해야 할 게 뭔지 대비해야 한다.
-경제둔화에 중앙은행이 다시 완화정책 꺼내 들었다. 돈이 대거 풀려도 괜찮나.
△경제가 둔화하면 뭐든지 해야 한다. 환자가 죽을 거 같으면 일단 뭐든지 해야 하지 않나. 멀쩡한 사람을 수술하면 안 되지만, 환자가 죽어가면 일단 피를 쏟아 붓고, 닦는 건 나중 일이다.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은 어떻게 해야 하나.
△어려운 얘기다. 하지만, 양쪽에서 욕먹으면 잘 하는 거라는 이야기가 있다. 연준에서도 그렇다. 연준에 편지가 많이 온다. 예전에 이자율만을 가지고 통화정책을 할 때, 사업하는 사람들은 이자율이 너무 높다고 하고, 반대로 연금 생활자들은 이자율이 낮다는 불만을 보낸다. 그 둘 간의 불만이 비슷하면 통화정책을 잘 했다고 한다. 불만이 한쪽으로 쏠리면 (통화정책 수정을) 다시 생각해보자고 한다. 물론 편지가 시장 반응을 다 반영하지 않지만, 연준에는 편지를 양쪽에 놓고 무게를 잰다는 그런 농담도 한다.
-우리나라는 한쪽의 불만이 더 강한 것 같은데.
△만약 한쪽의 불만이 더 많다면, 왜 통화정책을 그렇게 했는지를 조금 더 자신 있게 밝힐 필요가 있다. 당시의 자료를 가지고 올바르게 통화정책을 했는데도 불만을 듣는다면 억울하겠지만 어쩔 수 없다. 그래도 (한은이) 설명을 해야 한다.
-한은이 선제적이 아니라 따라가는 정책을 한다는 비판도 있다.
△예를 하나 들고 싶다. 지난해 인도네시아에 쓰나미가 왔다. 그런데 당시 그 해변가에서 록밴드가 공연하는 영상이 있다. 지금 우리는 “어떻게 거기서 콘서트를 하냐” 하겠지만, 당시엔 몰랐으니까 그런 거다.
한은도 마찬가지다. 한은이 “통화정책을 할 당시 우리는 이만큼 알았고 다른 사람은 이만큼 알았다”고 설명한다면 비판이 줄어들 것이다. 그러려면 한은이 적극적으로 관련 보고서를 내야 한다. 미국의 경우 5년이 지나면 금통위 의사록을 실명으로 멘트 하나하나 다 낸다.
-연준의 통화정책은 어떤가. 선제적인가.
△연준은 (통화정책을) 일단 하고, 못 믿겠으면 (의사록이 공개되는) 5년 뒤에 보라는 식으로 한다. 통화정책을 펼 당시의 상황이 낱낱이 기록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연준의 통화정책에 대한 평가를 당시 알았던 것에 비해 잘했는지 못했는지 평가할 수 있다.
|
-국내경제 질문을 드리겠다. 최근 반도체 경기 꺾이는 것 같다. 반도체 유일론 대안 없을까.
△그걸 알면 이미 했겠다. 나같은 학자가 알면 장사하는 사람들이 이미 하지 않았겠나. 결국 하다보면 나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정하고 활발하게 시도할 수 있는 판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러다보면 나오는 것이다.
-풀어야 할 규제가 있을까.
△보통 규제는 있어야 할 이유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걸 잘 모른다. 독일이나 일본의 경험으로 인해 생긴 규제가 1970~1980년대에 우리나라에도 생겼기 때문이다. 독일이나 일본은 규제가 없는 상황의 폐해를 경험해봐서 안다. 그런데 우리는 모른다.
-미국은 어떤가.
△미국이 규제가 많지 않은 것은, 만약 잘못되는 경우 정부가 책임을 세게 묻기 때문에 그렇다. (규제가 없어도) 미국에서 사고가 잘 안 나는 것은, 사고를 치면 그게 평생 쫓아다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 이후 경제는 어떻게 될까.
△트럼프 정부 이후 글로벌 경제 시스템이 이미 바뀌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무역이 과거보다도 낮은 수준으로 정착될 거다. 그렇게 된다면, 넓게 봐야 중국, 좁게 보면 한국이 지난 50년간의 자유무역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본 나라로 기억될 것이다.
-보호무역 하에서 성장하는 나라는 나오기 힘든가.
△힘들다. 한 국가경제가 낮은 수준에 있다가 확 성장하는 것은, 대거 생산해낸 물품들이 팔릴 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지금까지 그걸 미국이 사줬으니 가능했지만, 안 사주면 성장 못 한다. 그러니까, (지금 막 성장하고 있는) 인도나 베트남 등은 억울할 수도 있다.
-이대로 (보호무역) 시스템이 정착될까.
△지금처럼 심하지는 않겠지만 트럼프 이전과 이후는 다른 세상이 돼 있을 것이다. 트럼프 전 100년과 후 100년을 놓고 비교한다면, 트럼프 정부를 기점으로 성장속도가 느려질 것 같다. 그리고 그게 보호무역주의 때문이 아닐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