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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①"미국은 헤게모니 전쟁중…신흥국 위기 오래 갈 수밖에 없다"

이정훈 기자I 2018.08.21 06:24:08

`여의도 비관론자` 김일구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무역보복·금리인상, 경제 넘어 외교·안보·헤게모니와 관련
80년대초 플라자합의, 90년대후반 亞외환위기와 닮은꼴
高성장에도 감세+재정확대…통화긴축 장기화 대비 포석
强달러도 장기화…세계경제 각자도생, 한국도 새 판 짜야

김일구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미국은 기준금리를 인상할 때에도 패권이라는 걸 생각합니다. 중국이라는 경쟁자가 자신들의 패권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하는 시점에 나온 무역전쟁은 미국이 벌이는 헤게모니 전쟁의 결과물입니다. 이 때문에 기준금리 인상과 달러화 강세는 오래 갈 것이고 그에 따른 신흥국 위기도 길어질 수 있습니다.”

스스로는 부인하지만 여의도 증권가에서 심심찮게 `비관론자`, `닥터둠`이라는 수식어가 달라 붙는 김일구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현재 나타나고 있는 연준의 통화긴축기조와 강(强)달러, 무역전쟁에 대해 “간단하게 볼 문제가 아니다”라고 한다. 비단 경제문제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정치·외교·안보, 나아가 글로벌 패권과 맞물린 것일 수 있다는 걱정에서다. 요즘 1984년 도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내놓은 전략방위구상(SDI) 등 문건들을 다시 꺼내 찬찬히 읽었다는 그는 광복절을 하루 앞둔 지난 14일 여의도 본사에서 가진 1시간여의 인터뷰 내내 걱정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렇지 않다면 좋겠지만, 지금 미국의 행보가 의도된 것이라면 상당히 심각한 문제이며 우리 같은 신흥국은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라는 게 고민의 실체다.

◇“금리인상+强달러=신흥국 위기…장기전으로 갈 수 있다”

최근 예금보험공사 `리스크 리뷰`에 쓴 `미국 금리인상 및 달러화 강세와 신흥국 위기`로 화제가 됐던 김 센터장은 국제 금융시장에서 기축통화가 영국 파운드에서 미 달러로 바뀌게 된 1900년대초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탄생부터 1980년대 초 플라자합의와 멕시코 등 중남미 위기, 1990년대 중·후반 아시아 외환위기까지 반복된 미국 기준금리 인상과 달러화 강세의 결합이 신흥국 위기로 이어졌던 역사에 주목했다.

그는 “신흥국 위기는 늘 이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고(高)금리라는 동일한 배경에 의해 반복적으로 나타났다”며 “특히 금리가 뛸 때 달러화 강세까지 가세하면 신흥국에는 위기가 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금리가 뛰고 달러가 강해지면 시중에 달러의 씨가 마르고 달러를 구하기 힘들어진 신흥국은 위기를 겪게 된다는 얘기다. 실제 미국의 전쟁에서 늘 돈줄 역할을 했던 유대계 자본인 JP모건체이스를 이끌고 있는 제이미 다이먼 최고경영자(CEO)가 뜬금 없이 언론에 대고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5%까지 뛸 수 있다”고 경고한 것도 미국 정부와의 사전 교감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석했다.

미국의 GDP대비 재정수지와 연방기금금리(FFR) 추이. 음영으로 표시된 과거 미국 금리 인상기에 재정긴축이 동시에 나타나며 재정수지는 개선됐지만 이번에는 금리가 올라가도 재정수지는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


김 센터장은 “역사적으로 연준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사이클에는 미 정부도 재정을 긴축적으로 써 정책 공조에 나섰지만 이번에는 금리 인상기에 감세(減稅)에 나서고 재정도 마구 퍼붓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미국 경제 성장세가 오래 유지될 수 있고 기준금리 인상도, 달러화 강세도 생각보다 길어질 수 있다고 점쳤다. 그의 표현대로 `아궁이에 장작을 밀어 넣으면서(=재정팽창) 방이 덥다고 에어컨을 트는(=통화긴축)` 식이니 오래 버틸 수 있다는 뜻이다. 역으로 신흥국들은 가장 두려워 해야할 시기라는 주장이다.

그는 “기축통화국이 아닌 중국은 경제 성장률을 높여 위안화를 더 가지면 인플레이션 위험이 높아지고 금리를 올린다고 해결할 수도 없다”면서 지금처럼 미국이 통화긴축과 재정팽창을 동시에 쓸 경우 미국은 오래 버틸 수 있지만 중국은 어렵다고 했다. 이 때문에 “중국은 위안화 절하로 긴축효과를 약간 내면서 수출을 도우면서 다른 한편으로 지급준비율을 낮춰 유동성을 늘려가는 애매한 전략을 쓰고 있다”며 이를 일종의 시간 끌기 전략이라고 해석했다.

◇“무역전쟁은 헤게모니 전쟁…亞패권 둘러싼 中 견제 포석”

더 큰 걱정은 트럼프가 쏘아올린 무역전쟁이다. 김 센터장은 “처음엔 다들 트럼프가 선거용으로 무역전쟁을 들고 나온 것이라 생각해 크게 걱정하지 않았고 중국도 그랬다”고 지적하면서도 이후 트럼프가 보복관세를 부과하는 등 실제 무역전쟁에 나선 전후 사정을 보면 이 모든 게 패권과 관련돼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현재 헤게모니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도 했다.

긴 설명을 압축하면 이렇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1주년을 맞아 의회에 제출한 국방안보백서에서 중국을 주적(主敵)으로 지목했고 이를 계기로 중국과 척지기를 꺼렸던 시장주의자 게리 콘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이 물러났다. 이 때 중국도 무역전쟁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불안을 느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추론이다.

결국 우려했던대로 2018년 새해가 되자 연초부터 트럼프는 관세 카드를 꺼내들었다. 3월에는 중국이 현존하는 미사일방어체계를 무력화할 수 있는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는데, 이 사건이 결정적인 방어쇠(trigger)였다. 그동안 하늘에서의 전쟁만큼은 중국에 앞섰다고 자신했지만 이 마저 위협을 맞자 중국 첨단산업을 견제하는 움직임이 빨라졌다. 곧바로 중국 거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와 ZTE를 정부기관에서 퇴출했고 ZTE에 대해선 미국 기업들의 거래도 금지했다. 또 1주일 뒤 트럼프는 합의를 깨고 중국산(産) 제품에 첫 보복관세를 때렸다. 곧바로 미군은 2023년 우주군 사령부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인터뷰 기사 ②편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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