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통토크]①‘갈매기의 꿈’ 보며 도전의식 키웠다

이 기사 AI가 핵심만 딱!
애니메이션 이미지
박형수 기자I 2018.05.24 07:02:34

김재철 코스닥협회장, 끊임없이 한계를 시험한 갈매기 조나단
보람있는 일 하고 싶어서 1996년 에스텍파마 창업
어려울 때 수영으로 극복…위기이자 기회였던 외환위기

[이데일리 박형수 기자] “학창시절 미국의 소설가 리처드 바크(Richard Bach)가 쓴 ‘갈매기의 꿈’을 보며 남들과 다른 삶을 꿈꿨습니다. 안정적인 직장에서 나와 창업하려고 마음먹었을 때 만류하는 사람들이 많았죠. 하지만 직장생활에서 보람을 느낄 수 없었기에 해보고 싶은 것을 하자는 생각으로 창업했습니다.”

김재철 코스닥협회장에게 ‘갈매기의 꿈’은 학창 시절 이후 삶을 살아가는 이정표였다. 주인공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은 대다수 갈매기가 나는 것보다 먹는 것을 중요하게 여길 때 홀로 비행연습에 몰두했다. 먹기 위해 나는 게 아니라 나는 것 자체가 좋았던 조나단은 끊임없이 자신의 한계를 시험했다. 고속낙하도 하고 수면비행도 해본다. ‘더 높이 더 빨리’ 날기 위해 애쓴다. 동료는 자신과 다른 삶을 사는 조나단을 배척했다. 하지만 조나단은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는 자기수련을 통해 완전한 비행술을 터득했다.

안정적인 직장 그만두고 무작정 창업…조나단 ‘도전정신’ 이정표

[이데일리 신태현 기자] 김재철 코스닥협회 회장이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내 코스닥협회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 회장은 1983년 태평양제약에 입사해 연구원으로 10여년을 근무한 뒤 창업을 준비했다. 올해로 22주년을 맞은 에스텍파마는 국내 대표적인 원료의약품 개발업체로 성장했다.

“수입하는 제품을 국산화하는 것이 주된 업무였습니다. 생산해야 의미가 있는데 보고서만 쓰고 끝나는 경우가 대다수였죠. 연구하는 것만으로는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보람을 느낄 수가 없었지요. 당시 느끼기에는 회사가 연구소는 필요한 데 연구소에 요구하는 사항이 없었던 것 같았어요. 결국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하자 결심했고, 아무것도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창업을 하게 됐습니다.”

김 회장은 코스닥 최고경영자(CEO) 가운데 운동 마니아로 통한다. 사내 야구팀에서 투수로 활약 중이고 수영도 젊은 직원 못지않게 한다. 수영을 잘하게 된 계기는 남다르다. “창업 초기 사업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건강도 나빠져서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죠. 일년 정도 하고 나니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고 사업도 좀 풀렸습니다.”

에스텍파마를 창업하고 5~6년은 온갖 고생을 다했다. 개발만 잘하면 될 줄 알았던 사업은 생산이 발목을 잡았다. 인력도 경험도 부족했던 탓이었다. 생산 일정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개발하기로 한 제품이 늦게 나왔다. 게다가 1996년 창업을 하고 이듬해 외환위기가 찾아왔다.

“갖고 있던 500만원에 대출 500만원을 더해 총 1000만원으로 50㎡(약 15평)짜리 사무실을 임대하면서 시작했습니다. 수입 원료의약품을 국산 제품으로 바꿔보겠다는 포부로 시작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죠. 초기 3년 동안 외부 연구소에서 자문 역할을 해주고 시설을 빌려 밤새 연구하는 생활을 반복했습니다. 3년 동안 수입도 전혀 없었지만 위염치료제 원료의약품을 개발할 수 있었습니다.”

외환 위기는 위기이자 기회였다. 자금을 조달할 수 없어 어려웠지만 원·달러 환율이 오르니 기회가 찾아왔다. 원료의약품을 수입하던 시절에 환율이 오르니 국산 원료의약품 가격도 올릴 수 있었다. 30%가량 가격을 올려도 수입 제품 대비 가격 경쟁력을 유지했다.

김 회장은 수요가 있지만 원료의약품을 만들지 못해 비싼 수입 원료를 사용하거나 제네릭을 내놓지 못하는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했다. 원료의약품 하나를 만드는 데 1년 6개월에서 2년이 걸렸다. 매일 새벽까지 연구하는 데 매진하며 제품 개발에 전념했다. 자금이 생기면 모두 설비투자와 연구 개발에 투입했다. 결국 매출이 늘었고, 2000년에 경기도 안산에 공장도 설립했다.

김 회장은 과거를 회상하면서 아찔했던 경험이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혈전치료제 원료의약품 개발에 성공했는데 막상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면 불량이 나오는 거에요. 거래처에 공급하기로 한 기한이 임박했는데도 문제를 찾지 못했어요. 이번에 실패하면 끝이다는 생각으로 3~4개월 동안 밤을 새워가며 시행착오를 반복했습니다. 결국 문제를 찾아내 해결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아직도 거래처와 계약하거나 새로운 제품을 개발할 때는 처음 연구 업무를 시작할 당시를 떠올리며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끊임없는 도전…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노력

김 회장은 지난 2007년 다시 한번 무모한 도전에 나섰다. 연 매출 200억원 규모였던 에스텍파마는 250억원을 투자해 화성에 공장을 건립했다. 걱정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김 회장 특유의 뚝심으로 밀어붙였다. 위험을 무릅쓰고 도전에 나선 덕분에 에스텍파마는 한번 더 도약했다. 매출액이 두배 가량 늘었다. 투자 시기를 1~2년 늦췄으면 투자 금액은 100억원 이상 늘어날 뻔했다. 화성 공장을 설립한 이후로도 크고 작은 어려움은 계속 찾아왔다.

유럽 시장으로 수출제품을 생산하던 안산공장에서 문제가 생겼다. 유럽에서 사업과 관련된 정기적인 검사를 하는데 기존 시스템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허가는 취소됐고 유럽 시장 진출이 중단됐다. 앞만 보고 달려가다 보니 뒷받침해주는 조직이 안정적으로 돌아가는지 확인하지 못했다고 판단한 김 회장은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에스텍파마는 우여곡절 끝에 국내뿐 아니라 유럽, 일본 등에서도 신뢰를 구축했다. 알코올중독치료제, 자기공명영상(MRI) 조영제, 위궤양치료제 등 새로운 제품을 해외시장에 본격 출시한다. 미국, 유럽, 중남미, 동남아시아 등 해외 시장에서 매출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위궤양치료제(RBM)를 지난 2009년 2월부터 일본시장에 본격적으로 수출하면서 천식치료제(PLK)와 함께 인지도를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위궤양치료제(RBM)와 간질치료제(토피라메이트), 알코올중독치료제(아캄프로세이트) 등의 유럽 진출도 이어졌다. 지난 2011년에는 수출 규모가 3700만달러를 넘어서면서 ‘3천만불 수출의 탑’을 수상했다.

▷김재철 코스닥협회장은…

△1960년 강원도 삼척 태생 △1983년 고려대 화학과 졸업 △1983년 태평양제약 중앙연구소 입사 △1999년 에스텍파마 설립 △2012년 한국생산성본부(KPC) 전국총교류회 회장 △2014년 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 부회장 △2014년 경기도야구연합회 회장 △2010년~2017년 2월 코스닥협회 이사·부회장·수석부회장 △2017년 코스닥협회 회장 취임

이 기사 AI가 핵심만 딱!
애니메이션 이미지지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