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전도사’ 김창경(58) 한양대 과학기술정책학과 교수는 지난 19일 기자와 만나 요즘 무슨 책을 읽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김 교수는 요즘 공중파 방송 강연은 물론 국회, 연구원 등에서 4차 산업혁명 관련 강연이 쇄도해 그 어느 때보다도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김 교수는 “오랫동안 MIT(매사추세츠공과대학)가 발간하는 ‘테크놀로지 리뷰’(Technology Review) 외에도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 같은 최신 기술 관련 잡지를 정기구독했지만 이제는 하나 빼고 다 끊었다”며 “과학은 이제 궁극의 단계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위키피디아·구글로 빠르게 정보 습득..부족할 땐 유튜브로
김 교수는 과학이 한계에 도달했으며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증거가 바로 최근 네이처에 발표된 ‘알파고 제로’라고 말했다. 알파고 제로가 인간의 기보를 입력하지 않고 스스로와의 대국을 통해 성장했다는 사실은 이제 과학이 사람의 영역을 벗어났다는 증거라는 설명이다.
구글의 AI(인공지능) 자회사 딥마인드가 개발한 알파고 제로는 지난 18일 과학학술지 네이처를 통해 소개됐다. 앞서 이세돌 9단과의 대결에서 승리했던 알파고와 달리 처음부터 스스로 학습하며, 알파고와 대국을 벌여 100대 0 전승을 기록했다는 사실이 발표되자 전세계는 또 한번 발칵 뒤집혔다.
김 교수는 “알파고 제로의 ‘강화학습’을 공부하기 위해 위키피디아를 찾아봤고, 꼬리에 꼬리를 물며 구글링을 통해 공부했다. 이제는 인터넷만 뒤져봐도 수준 높은 정보들을 충분히 습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위키피디아에 관심분야에 관한 정보가 없거나 부족할 때는 적극적으로 구글을 찾는다. “깊이 있는 지식을 얻으려면 아무래도 전통적인 책이 낫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그렇지 않다”며 “블로그든 PDF 파일이든, 어떤 형태로든 존재한다. 어떻게든 찾아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위키피디아와 구글 만으로도 정보가 부족하다고 느껴질 땐 어떻게할까. 김 교수는 ‘유튜브’로 정보의 범위를 확대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글자로 이해가 가지 않을 경우 눈으로 직접 현장이나 사물을 확인하면 이해를 높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최근에도 구글이 소프트뱅크에 매각한 로봇기업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새로 공개한 로봇개 동영상을 보며 기술의 발전에 새삼 놀랐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공개된 동영상에서 본 모습보다 훨씬 더 로봇개의 행동이나 모습이 자연스러워졌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제는 로봇의 정교함이 인간보다 더 실제처럼 느껴지는 지경이 됐다”고 언급했다.
김 교수가 ‘이제는 책이 필요없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 일반적인 고정관념 상에서 말하는 두꺼운 표지에 종이로 인쇄된 형태의 ‘책’을 말하는 것일 뿐 지식이 아예 필요치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는 “책으로 출판된 내용을 읽었을 때는 이미 정보 싸움에서 뒤처진 것이다. 4차 산업혁명에서는 연결과 빅데이터, 인재 그리고 속도가 매우 중요하다”고 잘라 말했다.
이는 미래학자 윌리스 하먼이 예측한 미래 대학의 모습과도 비슷하다. 하먼은 미래에 대학이 사이버대학으로 전환될 것이고, 교과서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학사 일정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전망했다. 대학생들이 자신의 바이오리듬에 맞춰 자유롭게 수업을 듣기 때문에 학교의 형태도, 학사일정도 필요없으며 여러가지 형태로 정보를 습득하고 공부하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몽골의 바투시 미안간바야라는 소년은 15세에 인터넷으로 MIT의 공학 강좌를 수강해 만점을 받았고, 성장한 뒤 MIT에 진학했다.
김 교수는 4차 산업혁명의 중심은 무료라는 점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유료 서비스를 도입한 신문들이 모두 망한 이유는 정보를 유료로 판매하려 했기 때문인데, 이제는 정보를 무료로 주는 대신 이용자의 정보를 얻어 활용하는 방향을 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례로 미국에서는 유전체분석업체가 개인의 유전체 정보를 획득하는 대신 무료로 분석 결과를 제공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미 할리우드 배우 안젤리나 졸리가 유전체 분석을 통해 유방 및 난소암 발병과 관련된 돌연변이 유전자를 갖고 있음을 확인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유전체 분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비용 문제에 부딪힌 개인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 따라서 유전체 분석을 하고싶은 개인들은 침을 제공하고, 유전체 분석업체는 이렇게 획득한 개인들의 침샘 정보를 다른 연구에 활용해 새로운 수익창출 모델을 내놓는다는 것이다.
업체가 개인정보를 획득할 때 이용 목적을 한정하고 유출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하는 것이 우선시되는 것은 물론이다.
김 교수는 “이제는 굳이 돈을 내고 정보를 얻기 위해 책을 사지않아도 질 좋은 정보를 찾는 만큼 얻을 수 있는 시대”라며 “반드시 종이로 된 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창경 교수는…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미 MIT에서 금속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7년부터 한양대 공과대학 신소재공학부 교수를 지냈고, 이명박 정부 시절 대통령 교육과학문화수석비서관실 과학기술비서관을, 교육과학기술부 제 2차관을 지냈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를 직접 설계한 인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