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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멱칼럼]능력보다 자질 갖춘 지도자 필요한 때

이민주 기자I 2017.05.09 06:00:00
김병일 도산서원 원장


[김병일 도산서원 원장,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지금 우리는 국내외적으로 밀어닥친 여러 가지 난제들 속에 어느 때 보다 큰 혼란과 시련을 겪고 있다. 다시 도약하기 위해서는 슬기로운 해법의 모색이 절실하다. 해법은 무엇보다 ‘사람’에게서 찾아야 한다. 최근의 어려움과 좌절도 곱씹어보면 사람, 그 중에서도 능력보다 자질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 준다. 새로 맞는 시대에 우리 국민들과 지도자들이 갖추어야 할 바람직한 자질을 되짚어 주는 역사적인 교훈사례가 있어 소개한다.

얼마 전 경북 안동에 있는 한국국학진흥원에서 보백당 김계행(1431-1517) 선생 서거 500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다. 500여 년 전에 살다간 그의 삶과 정신을 기리는 1000여 명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보백당 선생은 청렴하고 강직하게 살다간 분으로 이름났다. 먼저 그의 청렴은 ‘보백당(寶白堂)’이란 호에 잘 나타나 있다. ‘우리집에는 보물이 없으니, 보물이라면 오직 청백뿐이다(吾家無寶物, 寶物惟淸白)’라는 뜻이 담긴 호이다. 이러한 청렴정신은 가훈이 되어 500년간 후손들의 삶에 녹아들면서 지금도 주위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다음으로, 그의 강직함에 대해서는 벼슬길에서의 몇 가지 일화가 전해준다. 보백당은 벼슬길이 매우 늦었다. 31세에 초시에 합격하여 이듬해 성주향교 교관이라는 낮은 직위부터 벼슬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때마침 맏조카 학조대사가 임지에 들리게 되었다. 학조는 삼촌인 보백당과 또래였지만 당시 불교를 강하게 숭상하던 세조의 신임을 받아 장관급(판서) 지위인 국사의 자리에 있었다. 그런 그가 시골에서 낮은 벼슬살이하며 고생하는 삼촌을 보니 처량한 생각이 들어 말했다.

“삼촌, 여기서 그만 고생하시고 서울로 가시지요. 가시고 싶은 자리가 있으시면 저한테 말씀하세요. 힘써 보겠습니다.”

삼촌의 처지가 애처로워 꺼낸 말이다. 그런데 보백당은 고맙다고 하기는커녕 버럭 화를 내면서 “어디서 못된 버릇을 배웠구나. 시키지도 않은 삼촌 인사운동이나 하려 하다니!” 하며 회초리를 들었다. 자기 인사운동을 하겠다는 가까운 사람을 이렇게 매질까지 하여 내치기란 정말 흔치 않은 일이다. 벼슬자리가 아무리 좋기로서니 옳지 않은 방법으로 그것을 얻으려 해서는 결코 안 된다는 생각에서 뿌리친 것이다. 이것은 ‘눈앞에 이익을 보면 올바른 것인지 먼저 생각’(見利思義)하는 선비 정신의 발로였다. 몇 년 못가 학조의 절대적 후원자 세조가 돌아가고 불교 숭상이 억압으로 확 바뀌었다. 그때 학조의 입김으로 벼슬자리를 얻었다면 이때 와서 어떻게 되었겠는가? 조카의 인사운동 제의를 배격한 보백당은 맡은 일을 착실히 하는 한편 공부도 꾸준히 하였다. 그리하여 근 20년이 지나 나이 50세에 드디어 최종 과거시험인 대과에 합격하였다. 뒤늦게나마 정당하게 벼슬길에 올라 유능하고 청렴한 공직자로서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그가 임금의 잘못을 직간하는 업무를 맡은 사간원의 최고직인 대사간까지 지낸 것이 이를 잘 증명해준다.

보백당은 당시 임금인 성종 앞에서도 임금이 스스로 옳다고 하면 신하가 감히 그 잘못을 바로잡지 못한다며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윗사람이 스스로 옳다고 단정하면 아랫사람은 입을 닫게 된다는 점을 날카롭게 건의한 것이다. 연산군이 왕위에 오른 첫해에는 65세에 도승지(지금의 대통령 비서실장)로 임명받았으나 상소를 올려 사의를 표하였는데, 왕이 윤허하지 않자 다시 극력 사양한 끝에 마침내 물러날 수 있었다. 제대로 일할 수 없는 상황이라 판단했기에 미련을 두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 그는 고향으로 물러나 20년 가까이 만휴정 정자에서 자연과 더불어 87세까지 장수를 누리다 세상을 떠났다.

500년이나 지난 오늘날에도 기념행사가 성황리에 진행될 만큼 보백당은 후손과 지역민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청렴하고 올바르게 살아가면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남아 오래도록 존경을 받는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주는 사례이다. 지금은 보백당 선생이 살아간 시절보다 올바름과 청렴에 대한 요구가 더욱 엄중해진 시대이다. 이래저래 자리에 관심 있을 여러 사람들이 마음에 새겨야 할 역사의 교훈이 아닐 수 없다.

<김병일 도산서원 원장,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김병일 도산서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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