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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공간으로 탈바꿈한 고속도로 화장실은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7월 문을 연 영동고속도로 문막휴게소(강릉 방향) 화장실은 ‘어린 왕자 화장실’로 불린다. 입구부터 어린 왕자를 읽는듯한 느낌이 드는 화장실로 꾸며졌다. 소설 속에 나오는 바오밥 나무도 화장실 안에 배치했다. 경부고속도로 서울 만남의광장 등 수도권 15곳 휴게소에는 세면대 거울에 휴게소 음식메뉴, 날씨, 고속도로 교통 등의 정보를 고객들에게 실시간으로 제공한다.
기피 장소였던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의 대반란은 ‘왜 고속도로 화장실은 쾌적하지 않을까?’라는 사소한 물음에서 시작됐다. 2002년 월드컵 때 추진한 화장실 시설 개선 이후 15년간 방치됐던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이 대대적인 개선 작업에 나선 첫걸음이었다. 막바지로 접어든 휴게소 화장실 개선사업은 내달 마무리돼 전국 182곳의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이 특성을 갖춘 새 공간으로 태어난다.
“서비스 개선은 ‘왜?’라는 물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서비스 개선의 첫 시작인 것이지요.” 지난 10일 경북 김천혁신도시 한국도로공사 본사에서 만난 김학송(사진·64) 한국도로공사 사장은 국민의 눈높이에 따라 공기업의 대국민 서비스도 혁신을 거듭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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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송 사장은 2013년 임기를 시작할 무렵 시민 입장에서 도로공사에 궁금한 점을 수첩에 적어봤다고 한다. 그때 적은 질문들은 ‘시민을 위한 일자리 창출 등의 복지는 왜 없을까, 휴게소에 대한 서비스 인식이 왜 낮을까?’ 등이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성공적으로 찾는다면 공사의 경쟁력도 자연스레 높아질 것으로 생각했다는 게 김 사장의 설명이다.
일자리 창출을 고민하던 중 나온 ‘졸음쉼터 푸드트럭 사업 공모’가 대표적이다. 도로공사는 2014년 ‘청년창업 휴게소’ 제도를 전격 도입했다. 만 20~35세 이하 청년들이 제출한 사업 아이디어 가운데 성공 가능성이 높은 아이템을 선별해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 내 점포와 졸음쉼터를 창업공간으로 제공했다. 졸음쉼터 푸드트럭은 이러한 창업 지원의 연장선에서 시작됐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도로공사가 졸음쉼터에 푸드트럭 운영을 결정한 지난해 5월만 하더라도 푸드트럭은 유원지나 체육시설, 도시공원에만 운영할 수 있었다. 이에 공사는 지난해 6월 국토교통부·식품의약품안전처와 식품위생법 시행규칙 개정을 위한 협의에 나섰다. 각 부처는 협의 시작 열흘 만에 시행규칙 개정에 합의하고 7월 말 시행규칙을 개정해 푸드트럭 창업 지원을 위한 장애물을 없앴다.
파격적인 조건도 눈길을 끌었다. 매달 10만원만 내면 푸드트럭을 빌려주기로 한 것. 운영 기간은 기본 1년에 평가를 통과한 우수 운영자는 운영 기간을 1년씩 연장해 주기로 했다. 영업 첫 6개월간 임대료(매출액의 1~3%)도 면제했다. 공사에 따르면 올 10월 현재 전국 휴게소 96곳과 졸음쉼터 15곳 등 총 111곳에서 청년 창업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청년 창업자의 일 평균 매출액은 40만원에서 최고 100만원을 웃돈다. 김 사장은 “도로 인프라를 활용해 청년들이 부담 없이 꿈을 펼칠 수 있는 무대를 만들면 어떨까 하고 생각한 게 결실을 맺었다”고 말했다.
◇‘국민인증’ 1등급 휴게소 50% 늘어
김 사장은 유독 서비스라는 단어를 많이 썼다. 시민은 공사의 고객이며 고객 만족을 위한 길은 서비스 향상뿐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고속도로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휴게소와 관련된 것들이었다”며 “휴게소의 서비스 개선이 전체적인 공사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공사가 꺼내 든 카드는 ‘휴게소 국민 평가제’였다. 공사는 2014년부터 전국의 휴게소를 마치 호텔 등급 매기듯 1~5등급으로 나눴다. 총 이용자 38만명이 참여한 가운데 서비스·편의시설·판매상품·전체 만족도 등 4개 항목으로 평가를 진행했다. 평가 첫해 경부선 죽전(서울 방향)·언양(서울 방향) 등 총 12곳이 1등급 휴게소에 뽑혔다. 1등급 휴게소는 ‘국민등급 인증마크’를 통해 이용자들에게 알려졌다. 올 2월 진행한 평가에서는 18곳이 1등급, 34곳이 2등급 평가를 받아 1등급 휴게소가 2년 새 50% 가까이 늘어났다.
나들목(IC)으로 나가지 않고도 지하철과 시내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고속도로 환승 정류장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해 말 수도권 외곽순환고속도로 가천대역 환승정류장에 이어 올 1월 경부고속도로 동천역 환승 정류장을 설치했다. 분당선 가천대역 고속도로 환승정류장 이용객은 하루 평균 1200명으로 이들의 이동시간은 종전보다 약 23분 단축됐다. 이 사업은 국토부가 개최한 ‘2016년 대한민국 국토경관 디자인 대전’에서 국토부 장관상을 받았다. 기획재정부 주관 ‘공공기관 협업평가회’에서 우수 사례에 뽑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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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본연의 업무인 안전을 게을리하지도 않는 모습이다. 김 사장은 올해 공사의 경영 목표를 ‘국민 안전 경영’으로 정하고 고속도로 주행 개선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노면 결빙으로 인한 미끄럼 사고 방지를 위해 공사가 자체 개발한 ‘어는비 예측 시스템’이 그것이다. 공사는 기상청으로부터 받은 기상 빅데이터로 ‘어는비 지수’를 산출하는 시스템을 개발해 영동고속도로에 시범 운영하고 오는 2018년까지 고속도로 전 노선에 구축하기로 했다.
김 사장의 이러한 노력들은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공사는 공기업 경영평가에서 2년 연속(2014~2015년) 최고 등급을 받은 데 이어 지난해 정부 3.0 평가에서 공공기관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김 사장은 지난 7월 미래창조과학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후원한 ‘2016 한국의 미래를 빛낼 CEO’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국민의 눈높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높아지고 있어 서비스의 질도 그만큼 높아져야 한다”며 “국민을 만족시켜 행복을 실현하는 공기업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 김학송 사장은…
경남 진해 출신으로 마산고와 건국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경남도의회 의원과 16~18대 국회의원(경남 진해)을 지냈다. 국회의원 시절 국회 국방위원장과 새누리당 전국위원회 의장 등을 역임했다. 특히 오랜 기간 국회 건설교통위원회(현 국토교통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해 교통 분야에 혜안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3년 12월 한국도로공사 사장에 취임한 이후 ‘국민 안전·서비스 혁신·미래 성장·상생 협력’을 역점 추진 목표로 정하고 공사 혁신을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