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보영 기자] 서울시가 서울 소재 어린이집을 상대로 자체 제작한 회계프로그램 사용을 요구하면서 마찰이 일고 있다. 서울시는 지원금 부정 사용 등 투명한 회계처리를 위해 불가피 하다는 입장이지만, 어린이집들은 비전문가인 원장이 직접 회계자료를 입력하도록 하는 등 현장을 고려하지 않은 ‘탁상행정’이라고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서울시 회계프로그램’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 재직 당시 ‘서울형 어린이집’을 도입하면서 자체 제작한 재무 회계 프로그램이다. 서울시는 회계투명성 확보 차원에서 국가나 지자체의 지원금을 받는 ‘서울형·국공립 어린이집’을 대상으로 사용을 의무화한 데 이어 서울소재 어린이집으로 적용대상을 확대하고 있다.
17일 어린이집연합회(연합회)등에 따르면 서울시는 지난 2014년부터 서울시 회계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는 어린이집은 각종 인센티브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식으로 서울시 회계프로그램 사용을 사실상 강제하고 있다.
문제는 서울시 회계프로그램은 원장 개인의 공인인증서로 접속하는 시스템이어서 회계 내역 작성 등 모든 업무를 원장이 도맡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전문성이 필요한 회계 업무 처리에 많은 시간이 걸릴뿐 아니라 잦은 실수로 되레 재무회계 점검 때 적발되는 사례가 늘었다는 게 연합회 측 설명이다.
성동구의 한 어린이집 원장 박모(45·여)씨는 “이전까지는 전문업체에 맡겼는데 서울시 프로그램을 이용하면서 모든 회계 작성 업무를 혼자 처리하게 됐다”며 “구체적인 사용 취지나 효과는 설명해 주지도 않고 무작정 사용하라니 난감하다”고 말했다. 성북구 어린이집 원장 송모(42·여)씨는 “전문가에게 맡기면 1~2시간 안에 끝날 일을 이제는 하루가 꼬박 걸린다”며 “열심히 작성해도 맞게 작성하는 건지 확인할 길이 없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시청 공무원이 회계 지출 내역을 수시로 접속해 점검할 수 있어 부정 사용 가능성을 원천 차단할 수 있다”며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사용을 독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회계 전문가 안모(42)씨는 그러나 “일부 어린이집 원장들은 도저히 혼자 할 자신이 없어 불법인 줄 알고도 개인 공인인증서를 전문가에게 맡겨 대신 업무를 처리해 달라고 요청하는 실정”이라며 “무작정 사용을 압박할 게 아니라 회계 전문가들과 연계해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