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특파원리포트)"401K"가 아니라 "201K"

이의철 기자I 2002.12.30 08:55:19
[뉴욕=edaily 이의철특파원] "401K"가 아니라 "201K". 최근 미국 직장인들 사이에선 기업연금 "401K"를 일컬어 "201K"라고 부르는 "자조적인 농담"이 유행이다. 직장인들이라면 대부분 가입하고 있는 기업연금이 3년째 지속되고 있는 주식시장의 약세로 거의 반토막이 났음을 빗댄 말이다. 올해 미국 주식시장은 60년만에 처음으로 3년 연속 하락장을 경험할 것으로 보인다. 401K란 미국 직장인들이 가장 많이 가입하고 있는 기업연금 플랜이다. 이 제도의 근거규정이 미국의 근로자 퇴직소득보장법 401조 K항에 있기 때문에 401K란 이름이 붙여졌다. 401K는 확정갹출형 연금상품으로 월소득에서 일정 부분(6% 이내로 제한된다)을 떼어내 뮤추얼펀드나 자사주 채권상품 예금상품 보험상품 등에 투자하도록 설계돼 있다. 어떤 상품에 투자하느냐는 가입자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회사는 퇴직적립금을 쌓지 않는 대신 근로자들이 붓는 것과 동일한 금액 만큼을 회사 비용으로 출연해준다. 이중 대부분은 자사주다. 연금 플랜이 주식시장과 밀접히 연계돼 있다는 것이 바로 "401K"의 양면이다. 10년 호황장일때 근로자들 대부분은 뮤추얼펀드 상품에 투자했고 회사는 자사주로 회사의 갹출분 만큼을 출연했다. 주식시장이 성장가도를 달리기만 해준다면 10년~20년 후에 받게될 퇴직연금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월급에서 뗀 출연금은 뮤추얼펀드로 이익을 보고, 회사에서 내준 자사주는 회사가 상장이 되면서 수십배의 차익을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반대의 상황이 닥친다면? 월급에서 출연한 펀드는 마이너스 수익률이 나고 자사주는 휴지조각이 되는 상황 말이다. 실제로 엔론을 비롯한 많은 기업들에서 이같은 상황이 발생해 해당회사의 근로자들은 연금 한푼 없이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401K"는 후발주자였으나 선배를 추월한 상품이다. 401K가 처음 도입됐던 80년대 초반만 해도 확정급부형 연금이 시장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을 무렵이었으나 당시 주식시장의 활황을 타고 확정갹출형인 "401K"가 무섭게 성장하기 시작해 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확정급부형을 앞서기 시작했다. 지난해 말 현재 확정갹출형의 시장점유율은 미국 퇴직연금 시장의 45%를 차지하는 반면 도입 역사가 훨씬 오래된 확정급부형은 25.5%에 불과하다. 1000명 이상 미국 대기업 종업원 가운데 70%가 401K 플랜에 가입돼 있으며 이중 뮤추얼펀드를 선택한 이들이 절반을 넘는다고 한다. "401K"가 시장점유율을 급속히 넓혔던 가장 큰 이유는 세제혜택이다. "401K"에 출연하는 돈은 해당 근로자의 소득세를 계산할 때 과세표준에서 제외되며, 퇴직 이후 연금을 찾아서 쓰는 시점에서 과세 대상이 된다. 따라서 가입자 입장에선 일정한도 내에서 소득공제와 투자 수익에 대한 비과세 혜택을 누리면서 연금을 개인 퇴직계좌에 적립하고 은퇴 후에는 낮은 소득세율로 인출할 수 있다. 연금을 찾아서 쓰는 시점은 사실상 근로소득이 발생하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에 세금도 그만큼 줄어든다. 어쨌든 401K의 상황이 이처럼 바뀌다보니 미국 사회의 모습도 많이 달라졌다. 우선 퇴직자들의 씀씀이가 줄었다. 60대 퇴직자들이 다시 재취업 전선에 나서고 있는가 하면 퇴직을 2-3년 앞둔 근로자들이 "더블 잡(double job)"을 구하는 데 혈안이 돼 있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한때 "401K 갑부"라는 말이 유행했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미국의 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다 보면 RV차량 뒤에 이동식 침대차를 달고 신나게 달리는 노부부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들은 직장을 은퇴한 뒤 겨울엔 따듯한 플로리다나 캘리포니아로, 여름엔 시원한 캐나다로 여행을 다니는 소위 말하는 "401K 갑부"들이다. 퇴직자들의 지갑이 얇아졌으니 그만큼 소비지출도 줄어들 것이며 따라서 소비지출에 의존하고 있는 미국(거의 70%를 민간소비가 차지하고 있다)의 경기회복은 더욱 늦어지게 됐다. 연방정부의 노인층을 대상으로 한 의료보험 재정도 늘어나야 한다. 부자 노인들을 겨냥한 실버산업도 타겟층을 바꾸거나 마케팅의 기대수준을 낮추어야 할 지 모른다. 10년 활황장의 거품은 2002년 세밑에도 이처럼 미국인들의 삶을 조금씩 바꾸어가고 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