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났지만 불편…동상이몽 ‘가족’

이지현 기자I 2024.09.15 09:59:52

2023 가족실태조사 결과서 나타난 요즘 가족
혈연·배우자 인정…배우자의 부모는 2명 중 1명만
심리적 유대감 높아야 가족 경제공동체·동거 인식↑

[이데일리 이지현 기자] “결혼은 안 하니?”, “둘째는 안 낳니?”, “아이는 공부 잘하니?”

명절이면 이런 말들을 한 번쯤 했거나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른들은 ‘가족이니까, 걱정되니까 하는 말’이라고 하지만, 듣는 이들은 웃으며 들을 수 없다. 늦어진 취업, 텅 빈 주머니, 치솟는 사교육비 부담에 허리가 휠 정도지만, 아무리 가족이어도 이를 터놓고 말할 수 없어서다.

그렇다면 보통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족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 눈에서 멀어져 마음서도 멀어진 가족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여성가족부로부터 연구용역을 받아 실시한 ‘2023년 가족실태조사 분석 연구’에 따르면 ‘우리 가족의 범위’를 묻는 물음에 △자녀(91.3%) △배우자(90.6%) △부모(86.6%) △형제자매(71.9%)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사진=게티이미지
대부분이 좁은 범위의 혈연 및 혼인 관계 중심으로 가족 범위를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연령별로 보면 10~20대는 부모(10대 95.7%, 20대 94.8%), 형제자매(10대 79.2%, 20대 79.6%) 중심으로 가족을 인식했다. 반면 30대는 배우자(90.6%), 부모(88.9%), 자녀(88.3%), 형제자매(74.7%) 순으로 가족을 포함했다. 40대 이상도 자녀-배우자-부모-형제자매 순으로 응답했다. 연령이 어릴수록 부모, 형제자매를 중심으로 가족으로 인정했지만, 연령이 많을수록 자녀, 배우자를 중심으로 ‘가족’으로 인식하는 셈이다.

민법 779조에 따르면 ‘가족의 범위’는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생계를 같이하는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다. 가족의 범위를 혈연뿐 아니라 혼인으로 이어진 관계도 본 것이다.

그러나 일반의 인식은 다르다. 대다수는 혈연관계와 배우자까지만 가족으로 인정했고 혼인관계로 맺어진 이들을 가족으로 인정하는 비율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배우자의 부모(63.1%)가 본인 부모(86.6%)보다, 딸의 자녀(50.8%)가 아들의 자녀(52.9%)보다, 사위(49.1%)가 며느리(51.0%)보다, 어머니쪽 조부모(34.4%)가 아버지쪽 조부모(38.3%)보다 가족이라고 덜 느꼈다. 이것은 가족의 범위가 남성 중심적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김영란 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3년 조사와 비교하면 배우자의 부모를 가족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7.3% 더 늘긴 했지만, 여전히 배우자의 부모와 본인의 부모와의 갭이 20%포인트 이상이나다보니 명절 때마다 친가를 먼저 갈 것이냐, 외가를 먼저 갈 것이냐를 두고 다툼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버지의 형제와 그 배우자(큰아버지, 큰어머니, 고모, 고모부, 작은아버지, 작은 어머니 등)를 가족으로 인정하는 경우는 23.8%로 4명 중 1명에도 못 미쳤다. 어머니의 형제와 그 배우자(이모, 이모부, 외함촌, 외숙모 등)를 가족으로 인정하는 경우는 이보다 더 낮은 22.2%에 그쳤다. 명절에만 가끔 보는 관계다 보니 가족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크게 낮은 것이다.

‘가족의 정의’도 차츰 달라지고 있다. 2020년 첫 조사에서 △혈연관계(89%) △법적 연결된 관계(83.7%) △심리적 유대감 느끼는 친밀한 관계(함께 살지 않아도 됨, 82.8%) △경제적 생계 함께 하는 관계(68.8%) △함께 거주하며 생활 공유 관계(64.7%) △내가 선택하고 구성할 수 있는 관계(38.7%) 등의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2023년 조사에서는 정의에 관한 동의 정도가 비슷했지만, △혈연관계(87.4%, 3년 전 조사 대비 -1.6%p) △법적 연결된 관계(83.1%, -0.6%p) △심리적 유대감 느끼는 친밀한 관계(79%, -3.8%p) 라는 답변 비율이 줄었다. 반면 △경제적 생계 함께 하는 관계(72.8%, 4%p) △함께 거주하며 생활 공유 관계(67.8%, 3.1%p) △내가 선택하고 구성할 수 있는 관계(39.7%, 1.0%p) 등의 답변이 조금씩 상승했다.

김영란 연구위원은 “가족 구성과 관련해 선택하고 구성할 수 있는 관계라기보다 혈연과 혼인에 기반해 주어지는 관계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며 “가족 기능과 관련해 경제적 공동체로서의 가족, 동거 여부보다 정서적 친밀성을 중요하게 고려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조사대상 2명 중 1명 이상(51.8%)이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가장 의지가 되는 사람으로 배우자(사실혼, 비혼동거 보함)를 꼽았다. 그 뒤를 △어머니(22.3%) △아들(5.8%) △아버지(5.1%) 등이 이었다. 성별로 보면 남성(55.9%)이 여성(47.7%)보다 높게 나타났다.

◇ 친家 외家 그것이 문제로다

명절마다 반복되는 누구집에 먼저 갈 것이냐의 갈등에 이제는 ‘부부 각자의 가족과 명절 보내자’는 의견을 지지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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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조사에서 29.9%였지만, 최근 조사에서는 35.1%로 5.2%포인트 상승했다. 연령별로 보면 △20대 49.1% △10대 47.2% △30대 42.8% △40대 37.3% △50대 32.9% △60대 25.4% △70대 이상 16.6% 등의 순으로 젊을수록 동의하는 비중이 높게 나타났다.

이 외에도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에 동의한다’ 55.2% △‘장례식을 가족 중심으로 치르는 것에 동의한다’ 58.9% △‘결혼식을 결혼 당사자 중심으로 치르는 것에 동의한다’ 58.5% △‘가부장정 가족호칭(도련님, 아가씨, 처남 등 남성의 가족과 친척에 대해서만 존칭하는 호칭) 개선에 동의한다’ 45.2% 등이 지지했다.

부모 부양 및 부모 책에 대한 인식도 조사에서는 ‘나이든 부모를 모시고 살아야 한다’고 동의 비율이 25.4%에 그쳤다. ‘나이 든 부모를 경제적으로 부양해야 한다’에 동의하는 비율은 40.8%에 이르렀다. 부모의 자녀 책임 관련 인식에 대한 동의 비율은 △자녀 취업까지 책임(44.6%) △자녀 결혼 준비(혼수, 신혼집 마련) 비용 책임(26.1%) 등의 순으로 높았다. ‘자녀 결혼 이후에도 책임(경제적 도움, 손자녀 돌보기 등)’(16.3%) 동의 비율은 가장 낮았다.

김 연구위원은 “최근 청년 세대의 경제적 불안정성이 높아지면서 성인기 이행 이전인 20세 미만 연령대에서 부모의 경제적 지원을 더 요구하는 인식이 있음을 시사하는 결과”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조사는 2005년 1차 조사 이후 2020년 제4차 조사까지 5년 주기로 전국 규모의 표본 조사를 실시했다. 2020년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으로 3년 단위로 조사 주기가 변경됐다. 조사 대상은 가구 및 가구에 속한 12세 이상 가구원, 1만2000가구 내외를 목표로 1대 1 면접조사로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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