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영 ‘LK-99’ 검증위원회 위원장(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은 지난 15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지난 7월 말 퀀텀에너지연구소가 개발했다고 주장하는 상온상압 초전도체(LK-99)와 관련해 검증위(초전도저온학회 주도) 위원장으로서 약 4개월을 검증에 매달려왔다. 퀀텀 측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과학계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만큼 철저한 검증이 필요해서다. 4개월간의 검증 끝에 검증위가 내놓은 결과는 “LK-99는 상온상압 초전도체라는 근거가 전혀 없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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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위원장은 “논문 내용에 대한 논란이 확산하면서 학회에서도 검증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검증위를 꾸리게 됐다”며 “교차측정과 재현실험이라는 과학적으로 확립된 방법을 바탕으로 검증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검증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주변 추천을 받아 자리에 오른 김 위원장이지만 지인과 가족들은 “왜 욕을 먹는 자리를 맡았냐”며 적극 만류했다. 그럼에도 김 위원장이 전면에 나선 건 과학인으로서의 사명감 때문이다. 김 위원장 외의 다른 검증위 참여 교수들도 각자 개인별 연구비(일부 학회 예산 사용)를 활용하며 검증 작업에 나섰다.
김 위원장에 따르면 LK-99 논문이 국제학술지에 투고돼 심사중이라는 이유로 검증의 핵심인 시료를 퀀텀에너지연구소측에서는 끝내 제공받지 못했다. 결국 검증위는 별도로 국내 8개 연구실이 참여해 재현실험에 나서야 했다. 재현실험 과정에서는 황산납과 같은 시료를 구하지 못해 애를 먹기도 했다.
김 위원장과 검증위는 황산납 확보 과정에서 전 세계를 수소문했다. 중국 지인을 통해 시료 100g을 어렵게 구했지만 화학물질을 우편으로 보낼 수 없는 규정 때문에 좌절감을 맛보기도 했다. 이에 검증위는 국내에 있던 중국 유학생들을 현지로 보내 비행기를 타고 직접 가져오는 식으로 시료를 확보했다.
김 위원장은 “과학적 검증에는 동료 검증도 필수 요소다. 학회가 검증해주면 더 힘이 실릴 수도 있다는 점에서 (퀀텀에너지측이) 시료를 주지 않은 이유가 타당한 것 같지 않다”며 “재현실험 결과에서도 결국 전기저항이 없고 자석을 띄울 수 있는 마이스너(반자성) 특성이 아니라 부도체(전기가 통하지 않는 물체)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연구 논문이 사실이기를 바라는 일부 누리꾼들에게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과학자로서의 양심과 책임을 걸고 위원장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번 일을 계기로 과학적 사실과 의견을 구별하고 동료 검증 등을 통해 결과에 신뢰성을 더하는 작업이 이뤄지기를 기대했다.
김 위원장은 “국위선양을 기대하는 국민이 많지만 과학은 데이터 확보, 첨단 장비 싸움”이라며 “이번 사례를 계기로 과학적 검증 방법론의 중요성에 대해 되새기고 충분한 검증을 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으면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