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개미투자자들이 급증하며 주주환원에 대한 목소리 커졌다. 게다가 국내 기업들의 배당성향(총배당금/순이익)이 선진국에 비해 낮은 만큼, 배당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증권가의 압력도 확대됐다. 이에 배당에 나서는 기업들은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과도한 배당 압박은 기업 가치 상승을 저해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
21일 한국 예탁결제원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중간배당에 나섰던 상장사는 모두 100곳으로 집계됐다. 역대 최대치다. 지난 2020년 48곳에 불과했던 중간배당 기업은 지난해 62곳으로 증가했고 올해는 작년보다도 61.3% 늘었다.
시장에서는 개인투자자가 급증하며 배당에 대한 기대가 높아진 데다 연기금의 압력이 커지며 기업이 스스로 배당을 확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평가한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배당성향은 19.14 수준으로 미국(37.27)이나 같은 아시아권인 일본(27.73)과 견주면 아직은 낮다는 지적도 배당 확대의 이유 중 하나다.
특히 최근엔 증시 변동성이 커지니 배당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정빈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에 대한 부담이 커지는 구간”이라며 “안정적인 배당주 매력은 부각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배당에 대한 압박이 확산하며 기업의 자율적 계획과 자금활용을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게다가 미국의 금리 인상과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는 국면이기도하다.
기업데이터 연구소 CEO스코어에 따르면 국내 매출 500대 기업의 상장사 중 비교 가능한 268곳의 올해 3분기 잉여현금흐름(FCF)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 같은기간(62조1110억원)보다 무려 77.2% 줄어든 14조1824억원으로 나타났다. FCF는 기업의 자금사정을 알려주는 주요지표로 배당 여력을 짐작할 수 있는 자료로 활용된다.
여기에 경기 전망은 점점 악화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시장조사 전문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2023년 수출 전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 기업들은 평균적으로 내년 수출이 올해보다 0.5% 증가하는 데 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최근 상장사들이 ‘배당 압력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고민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
시장에서는 배당이 주가 상승의 필수요소만은 아니며, 주주환원 중 하나의 선택지일 뿐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투자와 연구개발(R&D) 성과가 중요한 바이오기업이나 정보기술(IT) 기업 등은 오히려 배당보다 재투자가 주가 상승을 견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배당을 올려도 주가가 하락한 경우도 있다. 실제 배당주로 각광받는 KT&G(033780)는 연말 주가가 오히려 하락하는 경우도 나타났다. KT&G는 지난 2020년 배당수익률 5.8%에 가까운 배당을 약속했지만 12월부터 배당락일까지 0.97% 오르는 데 그쳤다. 이 기간 코스피의 상승률인 8.84%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지난해 역시 KT&G는 12월부터 배당락까지 2.69% 하락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는 5.43% 상승했지만 한참 못 미친 셈이다.
올해 역시 시가총액 상위 종목 중 유일하게 5%대 배당수익률이 기대되는 기아(000270)는 12월 들어 9.62% 하락했다. 코스피의 등락률(-5.81%)보다도 더 떨어진 수준이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국내 완성차 업체의 피해 우려로 기아는 연일 하락세를 면치 못하는 모습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주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결국 거시경제 영향력”이라며 “주가를 부양하기 위해 반드시 배당을 해야 한다는 것은 맞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배당 확대가 오너와 외국인에게 직접적인 혜택을 안겨준다는 지적도 있다. 시가총액 1위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율은 20일 기준 49.95%이며 금융업종 대장주인 KB금융의 외국인 지분율은 73.29%에 달한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업이 배당 대신 현금을 통해 신규투자를 나서거나 다른 활용도 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여기에서 중요한 건 기업과 주주들의 신뢰로 기업이 올바른 투자를 하고 있다는 믿음이 주주들에게도 전해져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업이 다양한 주주환원과 소통 의지를 드러내면 기업의 선택지도 넓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