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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일의 선비이야기]역사에 대한 밝은 안목과 바른 실천

송길호 기자I 2022.01.07 06:15:00
[김병일 도산서원 원장·전 기획예산처 장관]대선 정국에서 국가 리더십에 관심이 높아지자 역사적 인물을 재조명하는 일이 잦다. 한 TV채널에서 태종 이방원을 소환하고 있는 것이 좋은 예다. 어떤 역사학자는 사석에서 드라마를 보고 역사 공부를 한다고 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현실에서 드라마 작가나 식자층, 지도층의 역사 인식은 일반인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에 전달하는 사람이나 전달받는 사람 모두 역사와 인물에 대해 평소 밝은 안목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먼저, 전체를 보고 판단해야지 부분만 보아서는 안 된다. 역사는 시간이라는 무대 위에서 여러 요소들이 관계를 맺으며 전개되는 과정이다. 이것을 무시하고 자기에게 필요한 부분만 인용하면 역사 오용이다. 다음으로, 역사에서 장점을 찾아 배워야지 작은 단점만 찾아 비판하는 것도 금물이다. 특히 오래 검증된 역사적 위인은 더욱 신중해야 한다. 드라마 태종 이방원에도 등장한 포은 정몽주 선생(1337~1392)에 대한 평가가 대표적이다.

포은은 고려에는 충신이나 조선 건국에는 걸림돌이 되어 이방원이 보낸 자객에 의해 암살되고 3개월 뒤 조선은 건국된다. 그러나 불과 10년 후 태종은 그를 만고의 충신으로 높이며, 명예와 관작을 회복시키고 자손도 등용하였다. 또 100여년이 지난 중종 때에는 우리나라에 성리학을 뿌리내린 분으로 떠받들어지며, 공자가 모셔진 문묘에 조선 최초로 모셔진다. 고려의 충신인 포은이 조선에서 최고의 학자이자 충절의 롤모델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1517년, 퇴계 선생(1501~1570) 17세 때다.

50년 세월이 흘러 만년의 퇴계에게 한 제자가 “앞 왕조(고려)에서 왕씨의 후계를 세운 사람이 신씨(우왕과 창왕)였는데, 포은 선생은 그대로 받들면서 물러나지 않았으니 뒤에 공이 있었다 할지라도 어찌 속죄 받을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퇴계는 “그렇지 않네, 이어지게 한 사람은 신씨이지만 왕씨의 종사가 아직 망하지 않았으므로 포은께서 섬긴 것이네.”라고 답하였다. 포은이 나라를 위한 충성심과 성리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높이고 배워야지 고려 말 우왕과 창왕을 섬긴 그의 처신을 문제 삼아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퇴계의 이런 생각은 다시 100여년 지나 우암 송시열 선생(1607~1689)에게 계승된다. 우암은 포은 묘소 앞 신도비문에 “퇴계 선생의 말씀은 참으로 옳다.”고 남겼다. 퇴계와 우암으로부터 역사를 보는 안목과 위인의 장점을 배우려는 지혜를 볼 수 있다.

역사적 안목은 사명감과 실천력과 직결된다. 당시 조선 통치이념은 인간의 착한 본성과 올바른 이치를 지향하는 성리학이었지만, 현실에서는 골육상쟁의 왕위 쟁탈과 선비들이 죽거나 ㅤ쫓겨나는 사화가 이어졌다. 어찌해야 좋단 말인가? 퇴계는 이에 대해 ‘임금 한사람만 성군이 되도록 하기보다 근본적으로 백성이 깨어나야 한다. 그러려면 솔선수범하며 이끌어갈 엘리트 선비가 육성되어야 한다. 이런 선비를 길러내려면 민간이 훌륭한 선현을 모시고 공부하는 서원을 설립하는 것이라’ 고 확신하였다. 그래서 성리학을 도입한 안향 선생을 모신 백운동서원을 1550년 최초의 사액서원으로 격상시키는 일에 앞장섰다. 오늘날의 소수서원이다.

이어서 퇴계는 포은을 모시는 서원을 세워야 한다고 판단하고 선생이 자란 외가가 있는 영천의 제자들에게 권하였다. 이에 김응생, 노수, 정윤량 등 제자들은 1553년 서원을 창설하고 이듬해 두 번째로 사액을 받았다. 바로 임고서원이다. 서원에서 긴요한 책을 구하러 온 제자에게 임금이 하사한 책 《내사성리군서內賜性理群書》를 건넸다. “아니 임금이 내려준 책을 남에 주다니”라는 사람에게 퇴계는 “서원에 보내면 성현과 후학을 위하는 것인데 어찌 남이라 할 수 있는가”라며 관철했다. 책은 혼자 읽는 것보다 많은 학자들이 읽고 실천하면 더 이롭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역사와 위대한 인물을 공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의 진지한 사유와 치열한 행동을 통해 과거에서 교훈을 얻고 미래를 현명하게 설계하는 안목을 키우고 실천하는 것이다. 역사인물에 대한 호출이 잦아진 현실에서 모두 잊지 말아야 할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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