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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생활속으로]③잘 쓰이는 '대체어'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윤종성 기자I 2021.06.08 06:30:01

미국식 표기인 ''키스 앤드 라이드''
이해 쉬운 ''환승정차구역''으로 바꿔
리플→ 댓글, 스크린도어→ 안전문
"대체어는 간결하고 어렵지 않아야"

[이데일리 윤종성 기자] 외국어 단어나 표현을 우리 말에 섞어 쓰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소외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무슨 뜻인지 모를 외국어의 범람은 세대 갈등은 물론, 국민의 생명·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낯선 외국어가 우리 일상을 점령하기 전에 쉽고 바른 우리 말로 전환하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이데일리는 세종대왕 나신 날(5월15일)부터 한글날(10월9일) 즈음까지 총 12회에 걸쳐 외국어 남용 실태를 짚고, 우리말 사용 문화를 확산하기 위한 기획 기사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광교중앙역 ‘키스 앤드 라이드’의 ‘환승정차구역’ 변경 전후(왼쪽)와 탄현역 ‘환승정차구역’ 변경 전후(사진=한글문화연대)
기차 역 인근 도로 바닥에서 볼 수 있는 ‘환승정차구역’. 잠시 차를 세워 사람을 맞는 공간을 일컫는 이 말이 원래 ‘키스 앤드 라이드’로 쓰였던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글문화연대가 발 빠르게 대처해 우리말로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2017년 한글문화연대는 동천역에서 ‘키스 앤드 라이드’를 발견하고 용인시에 얘기해 우리말로 변경했다. 이후 광교중앙역, 탄현역, 영종역 등에서도 같은 글귀를 발견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정식으로 개선을 요청했다. 이후 한국철도공사와 국가철도공단은 18곳의 표기를 바꿨다.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는 “처음 ‘키스 앤드 라이드’를 보고 이 말의 뜻을 알아챌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고 개탄했다.

‘환승정차구역’은 ‘키스 앤드 라이드’와 비교하면 개념이 보다 명확하고, 이해하기 쉽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지금은 ‘임시정차구역’이란 말과 병용되는 이 단어는 맥락에 맞게 잘 다듬어져 대상어의 의미가 뚜렷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말이 더 널리 쓰이는 단서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 견해다. 범람하는 외국어 사용을 막으려면 이해하기 쉬운 대체어를 만들어 보급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의미다.

정태석 전북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이미 일상에서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고, 이해하기 쉬운 표현으로 대체어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특히 안전, 위험, 건강과 관련된 단어들의 경우 즉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해 대체어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잘 다듬은 단어로는 ‘블랙 아이스’의 대체어인 ‘도로 살얼음’을 꼽았다. 상황에 딱 들어맞아서 이해하기가 쉽다는 이유에서다.

전은진 한양대 인문과학대학 교수는 ‘댓글’(리플), ‘백지상태’(제로 베이스)를 잘 다듬어진 단어로 들었다. 그는 “대체어는 그 대상어의 의미를 잘 전달해 줄 수 있어야 하고, 간결하며, 어렵지 않아야 한다”면서 “대상어와 음절 수가 같거나 더 적은 것이 바람직하고, 형태적인 측면에서도 복잡하지 않고 규범에 맞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누리꾼(네티즌), 갓길(고속도로 노변) 등도 잘 다듬어진 우리말로 꼽혔다. 이관규 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한 번 들으면 잘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쉽고 정겨운 표현들”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섬네일’을 ‘마중그림’으로 바꾼 것은 아쉬운 사례로 꼽았다. 그는 “대체어가 잘 와닿지 않는 데다,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한자어라도 ‘축소판’ 등 일상에서 많은 사용하는 단어들을 고려했어야 한다”고 부연했다.

축산협회에 강의를 갔던 김형주 상명대 국어문화원 교수는 외국어 ‘마블링’ 대신 국립국어원이 다듬은 ‘결지방’을 쓰라고 권유했다가 혼쭐난 적이 있다. ‘그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지적이었다. 얘기가 오가던 중 “그럼 ‘꽃지방’은 어떠냐?”는 의견을 내자, 잔뜩 화가 나 있던 청중이 호의적으로 돌아섰다고 한다. 김 교수는 “외국어를 순화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기계적으로 다듬은 말을 내놓다 보니 입에 붙지 않고 거부감이 드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식의 순화어 정책으로는 우리말 사용 문화를 확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완벽한 대체어가 아니더라도 공공기관, 언론, 교육기관 등에서 사용 빈도를 늘려 우리말을 계속 유통시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민병곤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다듬은 말들 중에는 다소 어색한 것도 있고 원어의 뜻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때도 있지만 자꾸 쓰다 보면 일상 속에 스며든다”며 “완벽하지 않더라도 계속 다듬어가며 우리말로 소통하고 유대를 강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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