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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혁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채널A 기자와 한동훈 검사장과의 ‘검언유착’ 의혹을 보도한 MBC의 3월 31일 보도를 사전에 알고 있었느냐, 아는 걸 넘어 기획까지 관여한 것 아니냐를 두고 의심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조선·중앙 일보가 ‘(한상혁 위원장이 권경애 변호사에게) MBC 보도가 나가기 전 한 검사장을 내쫓는 보도가 나갈 것이라고 전화했다’고 보도하면서 시작됐고, 통화한 시간이 보도 시점(3월 31일 오후 8시경)보다 늦은 3월 31일 오후 9시 9분경임이 밝혀졌음에도 논란은 여전합니다.
보수 논객들은 종합편성채널에 나와 계속 ‘뭔가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미래통합당은 특검과 국정조사, 고발까지 언급하고 있습니다.
권언유착의 가능성을 의심하는 일 자체를 뭐라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사건의 발단을 제공한 권경애 변호사가 보도 이후 시간 착오는 인정했지만, 여전히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한 위원장이 한동훈 검사장을 쫓아내야 한다고 말한 건 맞고 권언유착 가능성을 의심한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동훈 ‘일개 장관’ 발언 가능하듯 한상혁 정치적 의견 밝힐 수 있어
그런데 저는 이 사건의 주어를 달리해 보면 우리 사회의 편 가르기 문화가 빚은 해프닝에 가깝지 않은가 합니다.
방송 정책을 관장하는 방통위원장이라도 사적인 공간에서 지인에게 정치적 견해를 밝힐 순 있는데, 나와 생각이 다르면 일단 분통 터져 하는 문화가 일을 키우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것이죠.
채널A 기자와 한동훈 검사장간 녹취록에서 ‘일개 장관’이라는 한 검사장의 발언에 추미애 법무무 장관이 ‘자괴감’을 언급하며 발끈한 일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사적인 공간에서 공무원(한동훈)도 장관(추미애)을 비판할 수 있듯이,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한상혁)역시 정치적인 견해를 밝힐 수 있는 것 아닐까요?
그래서 이 사건이 ‘권언유착’이 되려면 보다 확실한 증거가 필요한 게 아닌가 합니다.
통화의 본질은 정치 토론..권 변호사는 사과문자
하지만 지금까지는 ①통화 시점이 MBC 보도 이후였다는 점(사전 인지했다는 것은 오보)②통화한 계기가 3월 26일경 권 변호사의 부재중 전화에 대한 콜백이었다는 점(통화의 본질이 서로 다른 정치적 견해에 대한 토론이었다는 점)③권 변호사의 글이 ‘한동훈을 내쫓을 것’이라는 주장에서 ‘한동훈을 내쫓아야 한다’는 의견으로 바뀐 점(권 변호사 기억의 부정확성이 의심되는 점) ④조선·중앙 보도 이후 권 변호사가 한 위원장에게 사과 문자를 보냈다는 점(자신이 보도를 막기 위해 노력했다는 걸 언급한 점) 정도만 드러난 상황입니다.
그 외에 권경애 변호사가 왜 권언 유착 가능성을 거두지 않느냐, 방통위원장은 MBC 보도 직후 A검사장이 한동훈인 줄 어떻게 알았는 가라는 논란은 있지만, 이는 의견이 다를 수 있는 영역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보는 사람에 따라 평소 논쟁에서 지기 싫어하는 권 변호사 성격 때문이라고 볼 수도, 권언유착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한 정의로운 폭로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죠.
A검사장의 실체를 통화 당시 한 위원장이 알게 된 경위 역시 오래 법조계에 몸담아온데다 방송을 관장하는 방송통신위원장으로서 그럴 수 있다는 의견과, 실명이 아니었는데 알았다면 보도 내용에까지 개입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동시에 존재하는 게 사실입니다.
조선·중앙 보도 언중위 심의로
다만, 이런 정황만으로 권언유착의 증거라 말하기는 어렵죠. 한상혁 위원장은 조선·중앙일보 보도에 대해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해 정정보도와 손해배상을 청구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한상혁 위원장과 권경애 변호사 간 통화는 자체로는 해프닝일 수 있지만, 채널A기자의 강요미수 사건으로 촉발된 검언유착, 권언유착 논란에 방통위가 휩싸인 일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유튜브와 넷플릭스의 공세 속에서 국내 미디어·콘텐츠 생태계가 심각한 위기인데, 정치의 한복판에 방통위가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검언유착도 권언유착도 사실 확인보다는 이미 정치적인 프레임이 돼 버린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