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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일자리 창출 뒷걸음질 왜?…"인건비 규제" Vs "방만경영"

최훈길 기자I 2020.05.08 05:00:01

[공공기관 대해부]③일자리 창출
채용 줄인 공공기관 178곳 배경 살펴보니
한전·발전사·석유公 등 에너지 공기업 급감
文 탈원전·탈석탄, MB 해외자원개발 여파
기재부 인건비 규제, 부실·방만경영 영향도

취업준비생을 비롯한 구직자들이 지난달 8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2020 공공기관 채용정보 박람회를 찾았다. 통계청 3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청년(15~29세) 취업자는 작년 3월보다 22만9000명 줄었다. 이는 금융위기 때인 2009년 1월(-26만2000명) 이후 취업자가 최대로 급감한 ‘고용쇼크’다. 뉴시스 제공
[세종=이데일리 최훈길 윤종성 이승현 김상윤 김소연 강민구 기자 김나경 인턴기자] 일자리 창출 성과는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등급을 좌우할 수 있는 항목이다. 100점 만점에 배점이 10점(일자리 창출+총인건비 관리)이나 된다. 그럼에도 지난해 전체 공공기관 중 절반이 넘는 178개 기관이 채용을 줄인 것은 정부 책임이 크다.

공공기관들은 채용을 확대하려고 해도 인건비 규제 등 각종 제약에 발목이 잡혀 쉽지 않다고 하소연한다. 그러나 일부 공공기관들은 방만·부실경영으로 그나마 남은 여력을 소진하기도 했다. 공공부문에서 재정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양질의 채용을 늘리려면 정부는 공공기관 통제 수위를 낮춰 자율성을 부여하고, 공공기관은 탄력근무제, 임금피크제 도입 등 끊임없는 경영혁신을 통해 고용 창출 여력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탈원전 직격탄 한수원, 최장 4년째 일자리 창출 뒷걸음질

이데일리가 7일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를 통해 공공기관 362곳(부속기관 포함)을 전수조사한 결과, 많게는 연간 수조원대 매출과 영업이익을 올리는 대형 공기업들도 신용채용 규모를 절반 가까이 축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기업 36곳중 17곳(47%)이 전년보다 신규 채용(정규직 기준)을 줄였다.

에너지 공기업들의 채용이 급감했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채용 규모는 2015년 1369명에서 지난해 415.5명으로 2016~2019년 4년 연속 감소했다. 4년 연속 신규채용을 줄인 공기업은 362곳 중 한수원뿐이다. 2014년 이후 매년 수백명 가량 채용을 늘려온 한국전력(015760)은 작년에는 5년 만에 채용 규모를 전년보다 소폭(-13명) 줄였다. 한국동서발전의 채용 규모는 지난해 90명에 그쳐 4년 만에 가장 적었다.

이들 공기업은 탈원전·탈석탄 등 에너지전환 정책으로 경영 환경이 악화하면서 채용 여력이 줄었다. 지난해 한전은 1조2765억원의 영업 적자(연결 기준)를 봤다.

한전 관계자는 “정부가 요금을 통제한 탓에 재무 성과가 나빠질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한수원 관계자는 “신고리 3·4호기 건설이 마무리되고 추가 사업이 없으면서 신규 채용을 늘릴 요인이 적었다”고 말했다. 동서발전 관계자는 “호남화력발전소를 폐쇄하는 등 정원을 더 확대할 여지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한국석유공사, 한국광물자원공사는 여지껏 이명박정부의 무리한 해외자원개발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석유공사 채용은 전년보다 32명이 줄어든 22명에 그쳤다. 석유공사 관계자는 “올해까지 감원하는 구조조정을 추진 중이서 신규 채용은 최소한의 수준에서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광해관리공단과의 통폐합을 준비 중인 광물공사는 지난해 신규 채용이 0명이다.

정부의 총인건비 규제도 걸림돌이다. 정부는 탄력정원제를 도입해 정원을 확대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었지만 공공기관에선 “여전히 기재부 문턱을 넘기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탄력정원제는 공공기관이 총인건비 범위 내에서 정원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한 제도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인 2017년에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공공기관 경영평가 주요 평가항목으로 신설하고 이를 위해 ‘탄력정원제’를 도입했다. 해당 공공기관이 얼마나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려고 노력하는지를 평가에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실적, 일자리 나누기 실적 등도 주요 평가사항이다.

지난해 채용이 감소한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기재부가 인건비 통제를 통해 사실상 직원 규모를 정하는 상황”이라며 “퇴직자가 늘어나지 않는 한 임의로 채용을 늘릴 수 없는 구조”라고 전했다. 3년 이상 채용이 줄어든 또다른 공공기관 관계자도 “예산팀에서 노력했지만 기재부를 설득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고용환경 악화로 인해 지난해 공공기관 전체 채용 규모는 2018년 3만3834명에서 지난해 3만3353명으로 역주행했다.

조양석 한국노총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 정책실장은 “기재부가 예산·인원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공공기관의 채용 여력이 많지 않다”며 “채용을 대폭 늘리려면 공공기관에 자율성을 보장하고 잘못하면 엄격한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관리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공기관 지원과 경영혁신 함께가야”

공공기관 특성상 정부 정책변화와 비용 통제 영향에서 벗어날 수는 없지만 채용규모가 줄어든데는 공공기관의 방만·부실경영 영향도 크다. 2018~2019년 2년 연속으로 채용이 줄어든 한국농어촌공사는 2018년 11월 당시 최규성 사장이 검찰 수사를 앞두고 중도사퇴했다. 기관장 공백기가 이듬해 3월 초까지 이어졌다. 계획했던 7조원 규모의 태양광 사업도 물거품이 됐다.

기재부 관계자는 “현실적인 인건비 한계가 있더라도 탄력근무제, 임금피크제, 구조조정, 경영개선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려고 하는 공공기관들도 많다”며 “고용 창출·질 개선을 위한 노력도 경영평가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례로 한국폴리텍대는 지난해 역대최대 수준인 129명을 신규 채용했다. 기존 교과 과정을 산업현장 변화에 발맞춰 재설계하고 기업 수요에 맞춰 신규 과목을 확대하면서 자연스레 교수진도 세대 교체가 이뤄졌다. 폴리텍대 관계자는 “산업 수요에 맞는 교수들을 새로 채용했다”며 “일련의 구조조정을 거쳤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지역난방공사 정원 증가분은 94명이지만 공사는 인건비 절감 노력 등을 통해 신규 채용 규모를 159명으로 늘렸다. 난방공사 관계자는 “정원 제한이 있었지만 안전관리 인원 등을 더 뽑으려고 전사적으로 노력한 결과”라고 말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채용 인원이 전년보다 줄어든 것은 (고용의 질 개선을 위한) 자체 혁신안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공공부문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려면 정부는 고용 환경을 만들어주고 공공기관은 끊임없는 경영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지난해 공공기관 경영평가 공기업 평가단장을 맡았던 신완선 성균관대 시스템경영공학과 교수는 “정부는 방만경영은 철저히 감독하되, 열심히 하는데도 주어진 환경 때문에 일자리 창출이 어려운 공공기관에 대해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픽=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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