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공정위 위에 상생조정위?…옥상옥 이중규제 Vs 조정·중재 역할

김상윤 기자I 2020.03.04 04:00:00

중기부 추진 상생조정위 두고 옥상옥 논란
법률 근거 없이 대통령령에 의존한 위원회
검찰·공정위·특허청 사건처리도 심의·조정
상생법 중복조사 우려에도 의견없는 공정위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지난해 6월27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상생협력조정위원회 출범식에서 위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중기부 제공.
[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추진 중인 ‘상생조정위원회’를 두고 논란이다.

검찰과 공정거래위원회에 고소·고발 및 신고한 기술탈취와 수·위탁 불공정거래 혐의에 대해 당사자 간 조정·중재 결정은 물론 다른 부처의 사건처리 방향까지 자문 및 심의하는 막강한 권한을 법 개정이 아닌 대통령령을 통해 부여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경영계에서는 공정위가 이미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상생조정위가 ‘옥상옥’으로 군림하며 부담만 가중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앉아서 칼자루를 뺏길 처지인 공정위내에서도 중기부가 여권 실세인 박영선 장관을 등에 업고 무리하게 다른 부처 업무에까지 손을 뻗치려 한다며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검찰·공정위·특허청 컨트럴타워 ‘옥상옥’ 논란

중기부가 지난달 17일 입법예고한 ‘상생조정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제정안에 따르면 상생조정위는 중기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중기부 차관,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 대검찰청 차장검사 경찰청 및 특허처 차장 등 당연직을 비롯해 전문가 등 17명으로 구성된다. 지난해 6월27일 출범한 민관 자율합의체를 정식 기구화하는 셈이다.

위원회는 △기술분쟁 및 수·위탁 불공정거래행위에 관한 신고 및 고소·고발 사건에 대해 필요한 경우 조정·중재를 먼저 거치게 할지 여부 및 조정·중재 방향에 관한 사항 △여러 부처가 관련된 기술분쟁 및 수·위탁 불공정거래행위 관련 사건의 처리 및 조정·중재 방향에 관한 사항에 대해 심의·자문·조정 기능을 수행한다. 사실상 검찰, 경찰, 공정위, 특허청 업무까지 관여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이다.

이렇게 막강한 권한이 주어지지만 법적 근거는 국회 입법이 아닌 대통령령이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상생법에 조정·중재를 강제할 근거도 없는 상황에서 대통령령으로 다른 부처가 관할하는 법률을 제한하는 방식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면서 “법제처 심사를 통과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대통령령은 입법예고후 법제처 심사를 거쳐 국무회의에 상정돼 최종 의결된다.

반면 중기부는 법률에 명확한 근거조항이 없더라도 대통령령으로도 위원회를 설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중기부 관계자는 “상생법 시행령과 중소기업기술보호법에 중기부가 조정·중재를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는 만큼 대통령령으로 위원회를 설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정·중재 착수 여부를 당사자끼리 결정해야하는데도 위원회에 결정권을 부여한 것도 논란거리다. 제정안은 위원회가 각 부처에 신고 및 고소·고발된 사건에 대해 조정·중재를 먼저 거치게 할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대형로펌 소속 한 변호사는 “조정·중재는 당사자가 원해서 결정하는 게 기본인데 행정부가 이를 강제하는 것은 조정·중재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중기부 관계자는 “각 부처에서 조정·중재가 보다 효과적이라고 판단할 때 사건을 위원회에 상정하는 것”이라면서 “위원회는 자문·심의하는 기구인 터라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상생법 개정안에 의견 제출도 안 한 공정위

중기부는 대통령령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공정위 등 다른 유관부처와 아무런 협의조차 없었다. 들고 있던 칼자루를 뺏기게 생긴 공정위는 중기부가 입법예고 한 이후에야 뒤늦게 대응에 나선 상황이다. 공정위는 지난주에야 중기부 만든 대통령령에 대해 의견을 제출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중기부가 이런 안을 꺼내 들지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현재 중기부가 발의해 국회 법사위에 계류중인 상생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별다른 의견을 제출하지 않았다. 상생법 개정안에는 기술유용행위에 대해 중기부가 별도로 조사·제재할 수 있는 근거를 담고 있다. 공정위는 하도급법으로 기술유용 행위를 제재해 왔다.

경영계에서는 두 부처간의 실적 경쟁이나 중복 조사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익명을 요구한 4대 그룹 한 관계자는 “전속고발권 폐지때는 중복조사 우려를 감안해 공정위와 검찰이 사전에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조사·수사 범위를 나누려는 시도라도 했지만 이번에는 중기부가 공정위와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옥상옥 조직을 만들고 있다”며 “김상조 전 위원장 때는 생각 못할 일이 너무 쉽게 벌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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