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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지난 25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중소기업 간담회’에서 꺼낸 이 한 마디가 중소기업계를 술렁이게 했다. 중소기업계 대표들과 만난 공식석상에서 꺼낸 박 장관의 ‘소신 발언’은 중소기업인들을 당혹스럽게 하기 충분했다. 장관의 입에서 ‘노력해보겠다’라는 말을 기대했던 터라 이들의 허탈감은 더욱 컸다. “힘 센 장관이 와서 중소기업 입장을 잘 전달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첫만남부터 무언가 어긋난 느낌입니다.” 간담회에 참석한 한 중소기업계 관계자의 씁쓸한 한 마디다.
박 장관은 이달 초 취임하자마자 지역 중소기업과 전통시장을 방문하는 등 광폭행보를 보였다.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고 적극적인 박 장관의 모습을 보며 중소기업계는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더욱이 4선 중진에다가 여당 대표까지 한 ‘실세 장관’인만큼 중소기업계는 ‘앞으로 우리 의견이 전달되겠다’는 막연한 기대를 가졌다. 장관 후보자 시절 중소·벤처기업 유관단체들이 모두 지지성명을 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중소기업계의 기대감은 박 장관이 공식적으로 처음 갖는 중소기업인들과의 간담회에서 일부 균열이 생긴 듯하다. 최저임금 차등화 문제에 대해 박 장관과 중소기업계의 시각차이가 컸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장관들은 이 같은 업계 간담회에서 애로사항을 청취하면 ‘노력해보겠다’와 같이 긍정적으로 답변하곤 한다. 그렇지만 박 장관은 너무나 솔직했다. 장관으로서의 의견이 아닌, 사견을 전제로 최저임금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다. 나름대로의 소신발언이었지만 장관에게 일말의 기대감을 원했던 중소기업계로선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날 박 장관은 “당초 상임위을 통해 지방정부에서 최저임금을 맡으라고 했지만 이를 공개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가 사회적 갈등요소 때문이었다”면서 “임금은 물가랑 연동되기 때문에 서울에 살면 임금이 높아야 하고, 강원도 산골은 물가가 낮으니 임금이 낮아지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실질적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이런 부분들이 오히려 사회적 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며 “때문에 업종별·규모별로 최저임금을 차등화하게 해달라고 하면 이런 사회적 갈등이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나의 솔직한 답변”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중소기업계 대표들은 “해보지도 않고 안된다는 건 좀 아니지 않느냐”, “사회적갈등 초래를 왜 중소기업들이 책임져야 하는 것이냐” 등 불만 섞인 목소리를 내놨다. 자신들의 원했던 대답이 나오지 않으면서 중소기업계의 목소리도 한층 커졌다. 이 같은 중소기업인들의 반박에 박 장관은 한 발을 뺐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내 입장은 중앙정부가 최저임금 하한선을 정해주고 지자체별로 자율권을 주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며 “내년도 최저임금 정하는 데 있어서 중소기업계가 얼마나 설득력있게 이야기하느냐에 주안점을 둬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계는 문재인 정부 들어 부처로 승격한 중기부에 대한 실망감이 여전히 크다. 기대를 모았던 홍종학 전 장관 시절 중기부는 중소기업계 의견을 대변한다기 보다는 ‘청와대의 입’으로 중소기업계는 인식했다. ‘일자리 안정자금’ 홍보에만 매진하고 정작 무너진 중소기업계 생태계를 뒤돌아보지 않았다는 지적들이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자체 경쟁력(힘)있는 박 장관이 오면 전임 장관과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란 기대가 컸다. 하지만 이날 간담회를 통해 중기부 장관과 중소기업계의 괴리감이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물론 최저임금 등 노동현안은 중기부 장관이 직접 풀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다만 중소기업계 의견을 수렴해 이를 타 부처, 청와대 등과 중재할 수 있는 역할이라도 해줬으면 하는 게 중소기업계의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