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오토in] 카가이 제갈원 기자= “나도 한 때 잘 나갔던 시절이 있었어!이번에 옛 영광을 되찾을 거야”
혼다 CR-V는 한 때 수입 중형 SUV 시장을 평정했던 초 인기 차량이다. 2004년말 혼다코리아가 오토바이에 이어 한국에서 자동차 사업을 시작하면서 CR-V라는 강력한 무기를 앞세웠다. 당시 출시한 2세대 CR-V는 4기통 2.0L 가솔린 엔진을 달고 2990만원(2WD)이라는 저렴한 가격을 내세워 수입차 시장을 평정했다. 2004년 말 출시 이후 4년 연속 수입차 베스트셀링 모델 톱3 안에 이름을 올렸다. 이 때만 해도 디젤 승용차 인기가 별로 없던 때라 독일차가 중하위권에 포진했다.
CR-V는 2.4L 가솔린 엔진을 단 3세대 모델로 2007년에 수입 SUV 부문 1위에 올랐다. 혼다코리아가 렉서스를 제치고 수입차 전체 1위를 차지하는 데 1등 공신이 됐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 여파가 닥쳤다. 엔화가치가 100엔당 1500원을 넘어설 정도로 급등하자 다급해진 혼다코리아는 차량 가격을 올렸다. 결국 혼다코리아는 가격 인상 여파로 판매 부진에 빠졌고 이후 2009년부터 독일차의 전성기가 시작됐다.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고픈 CR-V가 지난달 사전계약을 받으며 다시 재림했다. 이번에는 첨단 반자율주행 기능의 '혼다센싱'과 1.5L 터보 가솔린 엔진을 얹은 다운사이징으로 차별화했다.
시승차량은 2017 서울모터쇼에서 출시된 5세대 혼다 CR-V에 혼다 센싱 기술을 처음 넣은 따끈따끈한 신차다. 전륜구동 엔트리부터 전 모델에 혼다센싱을 기본 탑재했다.
첫 인상은 미래지향적이면서도 우직하다. 좌우로 길게 뻗은 헤드램프와 육각형 라디에이터 그릴을 가로지르는 크롬 가로바 덕분에 실제보다 훨신 커보인다. 최근 출시한 혼다 차량은 촘촘한 LED가 박힌 헤드램프가 디자인 아이콘처럼 장착된 것을 볼 수 있다. 미관적으로도 좋을 뿐 아니라 기능적으로도 훌륭하다. ‘L’자 형으로 차량을 깊이 파고드는 테일램프는 역동성을 더한다. 1.5L 4기통 엔진이지만 두개의 배기 파이프가 인상적이다.
실내는 혼다의 장기자랑인 '패키지 능력'을 그대로 보여준다. 정말 실내 공간을 구석구석까지 버릴 곳 없이 활용했다. 차급보다 훨씬 크게 느껴진다. 전장 4590mm, 전폭 1855mm, 전고 1690mm에 휠베이스는 2660mm다. 이전 모델 대비 전장 50mm, 휠베이스 40mm가 길어졌다. 현대차 준중형 SUV 투싼보다 전장, 전폭, 전고가 각각 10mm, 5mm, 40mm 더 크다. 다만 휠베이스는 투싼에 비해 10mm가 작다. 실제로 탑승해본 CR-V의 실내 공간은 투싼보다 더 크게 느껴진다. 이는 센터페시아가 앞으로 밀려나 있을 뿐만 아니라 차량 중앙을 가로지르는 센터 터널 높이를 거의 수평에 가깝게(플랫하게) 낮췄기 때문이다.
디지털 계기반은 다양한 정보를 보기 쉽게 전달해준다. 또 컴바이너 타입의 헤드업 디스플레이도 마련돼 운전 집중도를 높인다. 특이한 것은 미니밴처럼 센터페시아 하단에 붙어 있는 변속기다. 사용하기 편리할 뿐 아니라 공간 활용도 제대로 할 수 있다. 이 덕분에 센터페시아 콘솔박스 공간이 상당히 넓어졌다. 아울러 스마트폰을 올려 놓을 수 있는 평평한 공간도 마련했다. 재미난 아이디어도 보인다. 운전석옆 트레이 박스는 칸막이를 분리하면 여성 핸드백을 수납할 수 있을 만큼 공간이 확장된다. USB포트도 넉넉하다. 1열에만 2개의 USB포트에 12V 파워아울렛 2개를 마련했다.센터 콘솔 박스에 있는 HDMI 단자를 통해 미디어 콘텐츠도 시청 할 수 있다. 최근 전자기기를 많이 사용하는 데 따른 배려로 느껴진다. 후석에도 에어벤트 아래 2개의 USB포트가 달려 있다. 다소 작은 7인치 센터 디스플레이는 국산 아틀란 내비게이션을 적용했다. 아쉬운 것은 터치 감도가 떨어질뿐 아니라 인터페이스 반응이 늦어 경우에 따라 답답함을 느낄 수 있겠다. 해상도는 꽤나 높아 시각적인 불편함은 없다.
2열공간은 꽤 만족스럽다. 헤드룸이나 무릎 공간이 넉넉하다. 3단으로 조절되는 열선시트도 마련했다. 다만 등받이 부분을 제외한 방석부분에만 열선이 작동된다. 리클라이닝을 지원하는 등받이와 낮은 센터 터널 덕에 3명이 타도 쾌적하다. 60:40으로 분할 폴딩되는 2열 시트는 트렁크 공간을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 할 수 있게 한다. 2열 시트를 모두 접을 경우 공간은 2146L까지 확장된다. 또 트렁크 하단을 올려 평평한 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 역시 혼다는 패키지의 달인이다.
실내 소재는 딱 대중차 수준이다. 차 값을 감안하면 납득할 수 있지만 현대 싼타페의 고급스런 소재가 떠오른다. 적어도 같은 대중차 가운데 소재 만큼은 '현대기아가 정말 잘 한다'고 칭찬할만 하다.
CR-V의 파워트레인은 1.5L 가솔린 터보에 무단변속기를 매칭했다. 배기량은 작지만 출력은 기존 2.4L 가솔린 엔진 못지 않다. 최고출력 193마력, 최대토크 24.5kg.m을 발휘한다. 최대 토크가 실용구간인 2000~5000RPM에서 나와 답답함을 느낄 일이 별로 없다. AWD 모델의 복합연비는 11.4km/L다. 터보 엔진 특성상 좋은 연비를 뽑아 내긴 어렵다. 살짝만 밟아도 가속력이 쏟아져 운전의 즐거움을 찾게 된다. 살살 달래가며 운전을 하면 도심 주행에서 리터당 10km 연비를 뽑아 낼 수 있다. 고속도로 정속주행에선 13km/L 이상 나온다.
승차감은 부드러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CR-V라는 모델명은 “Comfortable Runabout-Vehicle”의 앞 글자라고 한다. 부드러운 소형차라는 뜻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CR-V를 타보면 모난 곳 없이 부드러운 승차감을 보여준다. 4륜구동 역시 험로 탈출용보단 온로드 주행에 제격이다. 부드럽지만 핸들링은 수준급이다. 혼다 만의 쫀득한 실력을 보여준다.
CR-V의 가장 큰 특징은 반자율 시스템인 혼다센싱이 전 모델에 기본 탑재됐다는 점이다. 반자율 주행 기능은 최근 나오는 신차에 달린 가장 핫한 옵션이다. 막히는 도심이나 장거리 주행에서 빛을 발한다. CR-V에 장착된 혼다센싱은 레이더와 카메라를 기반으로 작동한다. 여기에는 자동 감응식 정속 주행(ACC), 저속 추종(LSF), 차선 유지 보조(LKAS), 추돌 경감 제동(CMBS), 차선 이탈 경감(RDM), 오토 하이빔(AHB) 등이 포함된다. 편안한 주행이 가능 한 것은 물론 미연에 발생할 수 있는 사고도 예방할 수 있다.
작동법은 간단하다. 스티어링 휠 오른쪽에 있는 버튼 중 ‘메인(MAIN)’이라고 씌여진 버튼을 누르면 반자율 주행 시스템이 작동된다. 이후 ‘SET’버튼을 누르면 현재 주행 중인 속도로 설정이 된다. 차선 가운데에 스티어링 휠이 그려진 버튼을 누르면 차선을 읽기 시작한다. 센서가 차선을 인식하면 계기반 디스플레이 창에 진한 하얀색으로 차선을 표시해준다. 이 때부터 스티어링을 별도로 조작하지 않아도 차량 스스로 제어를 한다. 선행 차량과의 간격을 벌리고 싶다면 우측 스포크에 장착된 간격 조절 버튼을 누르면 된다. 총 4단계로 조절할 수 있다. 가장 좁게 설정한 경우 차량 1.5대에서 2대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며 가장 넓은 4단계에선 차량 4대 이상의 거리를 유지한다. 속도는 최대 180km/h까지 설정이 가능하다. 스티어링휠에 위치한 '+,-' 버튼으로 속도 가감을 설정할 수 있다. 꾹 누르면 10km/h 씩 조절된다.
CR-V에 적용된 혼다센싱에는 저속 추종 기능이 장착돼 완전 정지까지 지원한다. 이는 정체 구간에서 운전자의 피로도를 낮춘다. 다만 정차 후 재출발 할 경우 스티어링휠 우측 스포크의 ‘+’버튼을 누르거나 가속페달을 살짝 밟아야 한다. 거의 대부분의 자동차 제조사의 반자율 시스템이 이와 같은 형태로 작동한다. 현재 자동차 제조사들이 채택하고 있는 방식은 선행하는 차량을 추종하는 수준이다. 이 경우 교차로에서 신호등은 적색인데 선행차가 이를 무시하고 주행 할 경우 의도치 않게 법규를 위반하거나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정차 후 재출발을 차량 스스로 하기 위해선 차량이 도로 표지판과 신호등을 인식해야 한다. 앞으로 자율 주행 관련 기술이 발전하고 법규가 체계적으로 자리 잡는다면 간단하게 해결 될 문제다.
혼다센싱의 기술 수준은 상당한 수준이다. 앞 차와의 간격을 유지할 때 가속과 감속 모두 부드럽게 이뤄진다. 또 차선의 한 가운데를 유지하는 실력도 수준급이다. 급한 코너에서는 조금의 스티어링 휠 조작이 필요하지만 아주 약간만 돌려줘도 금세 차선을 인식해 스스로 차량을 제어한다.
장거리 주행이나 정체구간을 자주 주행하지 않더라도 반자율 주행 옵션은 추천하고 싶다. 바로 사고 예방이 되기 때문이다. 반자율 주행 옵션은 아직까지 가격이 비싼 편이지만 단 한 번의 사고를 막거나 피해를 줄일 수 있다면 충분한 값어치를 한다고 볼 수 있다. 혼다센싱에 장착된 추돌 경감 제동 제동과 같은 기능 때문이다. 추돌 경감 제동은 전방의 차량 혹은 사람을 인식해 추돌을 감지하고 경고를 보냄과 동시에 스스로 제동을 가한다. 요즘 운전하면서 스마트폰을 자주 들여다보는 환경에서 꽤 효과적인 기능이다.
2010년 이후 디젤 열풍이 불면서 가솔린 SUV는 천대를 받았다. 연비가 나쁘고 디젤 엔진에 비해 초반 가속력이 떨어진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또 비싼 가솔린 값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경유에 비해 부담이었다. 그러나 2015년 폴크스바겐 디젤게이트와 BMW 디젤 화재 사건, 벤츠 디젤 요소수 조작 및 허위 인증 사건 등 잇단 사건이 꼬리를 물었다. 여기에 정부의 미세먼지 저감 대책의 일환으로 노후 디젤차 규제를 대폭 강화하고 있다. 또 휘발유와 경유의 가격 차이가 요즘 리터당 100원 내외로 줄었다. 이 때문인지 최근 가솔린 SUV를 찾는 소비자들이 증가하면서 수입차에서 가솔린 SUV 비중이 50%에 근접하고 있다. 이런 추세에 CR-V는 낮은 배기량으로 저렴한 세금까지 챙겼다.
CR-V는 옵션이나 성능, 그리고 첨단 장비에서 수준급 이상의 능력을 발휘한다. 가장 추천하는 트림은 3690만원의 2WD EX-L 트림이다. 최상위 4WD Touring에 비해 헤드업 디스플레이, 열선 스티어링휠, 파워 테일 게이트, 레인 와치, 열선 시트 등의 편의장비가 빠지지만 동일한 기능을 발휘하는 혼다 센싱이 장착되는 것은 물론 4WD 모델에 비해 연비도 더 좋다.
혼다코리아는 CR-V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5세대 CR-V라면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가성비와 실용성을 겸비한 차량이다. 3000만원대 구매할 수입 SUV를 찾는다면 CR-V는 꽤나 좋은 선택지다.
한 줄 평장점 : 사용하기 편리한 혼다 센싱과 구석구석 활용한 넓은 실내와 공간 패키징
단점 : 조작감이 떨어지는 7인치 센터 디스플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