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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성폭행 처벌’에 구멍이 있어서는 안 된다

논설 위원I 2018.08.17 06:00:00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행 사건에 대한 무죄 판결의 후폭풍이 거세다. 보수와 진보 진영을 가리지 않고 한목소리로 법원의 판결을 성토하고 나섰고, 국회는 이제라도 법망의 구멍을 메우자며 ‘노룰’(No means no rule)과 ‘예스룰’(Yes means yes rule) 도입에 속도를 낼 태세다. 여성계는 판결에 대한 항의 표시로 당초 다음주 열려던 대규모 성폭력·성차별 규탄 시위를 내일로 앞당겼다.

쟁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판결의 타당성 여부고, 다른 하나는 후진국형 성범죄 판단기준 여부다. 안 전 지사의 위력은 인정하면서도 위력을 이용한 성폭행의 근거는 부족하다며 “현행법상 처벌이 불가능하다”고 내린 재판부의 판결이 그 도화선이 됐다. 아내에 대한 남편의 성폭력도 인정하는 최근 추세나 “병장을 웃겨야 하는 이등병의 마음”이라는 피해자의 상황이 철저히 외면됐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엄연한 우리 법체계의 현실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정계와 여성계는 ‘사법폭력’, ‘미투운동 사형선고’ 등의 격렬한 표현으로 재판부의 협소한 법 해석을 질타하고 있다. 재판부가 ‘정조’ 운운하며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 잘못으로 몰고 갔다는 이유에서다. 여성계는 특히 ‘홍대 미대 몰카사건’으로 징역 10개월 실형을 선고받은 여성 모델의 경우까지 들어 “여성에게 국가는 없다”며 거세게 반발하는 분위기다.

사건은 대법원까지 가서야 법적 판단이 마무리될 전망이다. 하지만 이참에 성범죄 판단기준부터 바꾸는 게 우선이다. 상대방이 거부 의사를 밝혔거나 명시적으로 동의하지 않은 성행위는 강간으로 간주하는 ‘노룰’과 ‘예스룰’이 바로 그것이다. 폭행·협박·위력 등의 강압이 있어야만 성범죄가 성립되는 현행법과 달리 상대방 의사에 반하면 성범죄 처벌이 가능하도록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다.

미국, 독일 등은 벌써부터 노룰과 예스룰을 시행 중이다. 우리 국회에도 몇 달 전에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아직 법사위원회 문턱도 못 넘었다.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가 올 3월 “피해자의 동의 여부에 중점을 두도록 시정하라”고 권고했지만 묵살한 것이다. 이젠 억울한 피해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입법을 서두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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