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1년 우리금융 출범 후 현재까지 총 5명 회장과 6명(황영기 전 회장 겸임)의 은행장 가운데 3명이 검찰조사를 받았다. 사실상 우리은행을 포함해 우리금융을 총괄하는 수장 7명 중 4명이 검찰 조사를 받은 것이다. 우리금융과 우리은행 수장의 역사는 최근까지 ‘흑(黑)역사’의 반복이었다.
정권이 바뀌면서 불거진 대기업 비자금 사태와 특혜 대출 의혹 등으로 대부분 검찰 수사 선상에 오르거나 조사를 받아 시중은행 가운데 ‘수장 흑역사’의 대표주자로 굳어졌다. 정부가 대주주이다 보니 정권이나 금융당국의 입김에 휘둘리는 상황이 이어졌다. 결국 낙하산 인사로 점철되면서 ‘CEO(최고경영자) 리스크 관리’에도 허점이 발생했다. 주인 없는 회사의 취약점이 그대로 노출된 것이다. 그 후폭풍은 ‘현재 진행형’이다.
◇‘정권에 입김에…’ 자생적 흑역사 쓴 우리금융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이팔성 4대 우리금융 회장이 취임하면서 우리금융은 자생적인 흑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한일은행 출신인 이 전 회장은 이 전 대통령과 고려대 2년 선·후배 사이다.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 어윤대 전 KB금융지주 회장, 강만수 전 KDB산업은행 회장과 함께 이명박 정부(2008~2013년) 시기 ‘금융권 4대 천왕’으로 불렸다.
특히 이 전 회장은 2004년 우리투자증권 사장에서 물러난 뒤 ‘야인’으로 있다가 이 전 대통령의 제안을 받고 그 이듬해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에 올랐다. 2007년 대선 때에는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상근특보를 지내기도 했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서울을 글로벌 금융 허브로 만들자는 기조를 내세웠고 금융산업의 대형화 전략을 펼쳐야 한다는 이유로 이 전 회장을 우리금융 수장으로 내려보냈다. 이 전 대통령과 이 전 회장의 밀착관계는 최근 들어 검찰 조사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검찰은 이 전 회장이 이명박 정부 초기 정부가 최대주주였던 우리금융 회장으로 낙점된 점을 고려해 금품을 ‘보은성’ 인사청탁의 대가로 의심하고 있다.
이 전 회장에 앞서 황영기 전 회장과 박병원 전 회장도 검찰조사를 받았다.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철도공사 러시아 유전개발과 관련한 대출 외압 의혹으로 황 전 회장이 참고인 자격으로 검찰에 소환됐다.
박 전 회장도 지난 2007년11월 컨설팅용역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평가점수가 높은 컨설팅업체를 배제하고 다른 업체와 계약을 체결하도록 지시했다는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황 전 회장과 박 전 회장 모두 지난 2008년 우리은행이 C&그룹에 부당대출을 해줬다는 의혹으로 검찰 수사 선상에 오르기도 했다.
◇대기업 비자금 사건 때마다 등장…정부 소유 은행 한계
대기업 비자금 사건이나 정부 사업 관련 특혜대출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우리금융과 우리은행은 늘 등장했다.
지난 2013년 CJ그룹의 차명 계좌가 정부 소유의 우리은행에 집중됐다는 점에서 우리은행의 부실 경영 실태가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당시 우리금융 회장은 이팔성 회장이었다.
2007년 삼성 비자금 사건 때도 우리은행이 차명 계좌를 대거 개설해준 것으로 드러났었다. 당시 황영기 회장은 검찰로부터 출국금지 조치까지 받았다.
한 우리금융 퇴직 임원은 “당시 자금난을 겪던 무명의 C&그룹을 다른 은행들이 쳐다보지 않을 때 우리은행이 손을 잡아줘 뒷말이 무성했다”고 말했다.
결국 정부소유의 은행으로서 한계점을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반세기 이상 전부터 정부는 금융사에 갖가지 간섭을 일삼았고 우리금융은 관치금융의 대표로 낙인됐다”며 “정부 소유 은행이다 보니 낙하산 인사도 많고 정권 실세에 줄 대기 위한 움직임도 빈번했다”고 언급했다. 정부의 입김에 따라 대출 특혜나 채용비리 등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반복되는 검찰조사와 비리 의혹 등은 우리은행의 민영화와 지주사로 재전환에도 발목을 잡을 수 있어 우리은행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