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8일 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소식을 접하고 불현 듯 문재인 대통령의 여름 휴가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엠바고 탓에 정확한 날자를 못박지 않고 ‘7말8초’라고 보도했다. 문 대통령은 29일부터 휴가를 떠날 예정이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새벽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를 1시간 정도 주재했다. 긴박한 상황은 계속됐다. 국방부는 대응 전략을 발표했고 외신에서도 연이어 속보가 날라왔다. 이 상황에서 나랏님의 휴가 걱정을 하느냐고?
청와대 측은 ‘우리도 휴가를 미뤄야겠네’라며 포기한 출입기자들에게 ‘대통령은 고민 중’이라고만 알려왔다.(청와대 출입기자들은 보통 대통령 휴가 일정에 맞춰 여름 휴가를 잡는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문 대통령은 30일 휴가를 떠났다. 8월5일까지 6박7일 일정이다. 그는 평창과 진해에서 휴가를 보낸다고 했다. 물론 당초 예정보다 하루 늦어졌지만 정상적으로 휴가를 보내는 것이다.
대통령의 휴가에 맞물려 걱정된 또 한사람은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김 부총리는 지난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 합동브리핑에 평소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오른쪽 눈은 결막염에 걸려 붉게 충혈되었고 입술을 부르텄다.
신문1면에 김 부총리의 지친 사진을 넣으며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28일 김 부총리도 마침내 8월 7~11일 여름 휴가를 간다고 하기에 안심이 되기도 했다.
우리 풍토에서 문 대통령의 휴가는 논란이 될 수도 있다. 문 대통령 자신의 속내도 편치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대통령의 휴가 강행(?)에 박수를 보낸다. ‘쉴 권리’를 강조해온 대통령의 휴가는 그 자체로 상징성이 크기 때문이다. 영국의 메이 총리처럼 브렉시트 상황에서 해외 3주짜리 휴가를 떠나고, 주말이면 휴가지에서 산책을 하는 대통령의 모습도 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토요일인 지난 29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10만 여명이 휴가 등을 위해 해외로 출국했다. 하루 기록으로는 사상 최대라고 한다. 바닷가로 이어진 고속도로는 하루 종일 교통체증이 빚어졌다. 한번에 2주일 짜리 휴가를 가는 직장인도 부쩍 늘었다. 근로자의 ‘쉴 권리’, 기업의 ‘쉬게해야 할 의무’, 그리고 ‘휴식=생산성 증대’라는 등식에 대한 근로자와 기업의 공통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많은 직장인들에게 마음 편한 휴가는 아직 그림의 떡이다. 기업 규모가 작을 수록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나는 출근하는 게 휴가야”라는 사장의 말 한마디에 임원은 고개를 숙이고, 직원은 눈치를 봐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우리 직장인은 평균 15.1일의 연차가 부여되지만 실제 사용하는 것은 8일도 되지 않는다.
휴식은 생산성 증대로 이어진다. 많은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이제는 당당히 휴가를 떠나자. 이 상황에서 대통령도 휴가를 가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