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순위 20위권안에 다니는 최 모 과장은 올해로 직장생활 10년 차다. 서울에 있는 꽤 괜찮은 사립대를 나왔고 취업이 됐을 땐 친구들의 부러움도 샀다. 최 과장의 12월 월급명세서에는 교통비를 포함해 420만 원이 찍히지만 그의 손에 들어오는 건 365만원 안팎이다.
◇대출금·학원비에 늘어만 가는 마이너스통장 잔고
320만원의 쓰임은 매달 비슷하게 짜여 있다. 각종 공과금·도시가스·전기세·아파트 관리비·통신요금 등이 60만원, 자동차 보험료와 주유비 월 30만원이다. 초등학교 1학년 인 첫째의 매달 수업료로 월 30만원이 들어간다. 4살인 둘째는 무상보육으로 어린이집을 무료로 다니지만 각종 활동비와 차량운행비 등으로 월 10만원 정도를 낸다.
5.7% 이자율로 집 구매와 동시에 만든 마이너스 통장은 벌써 1500만원이다. 복리로 계산되는 마이너스 통장을 그대로 둘 수 없다는 생각에 지난 달부터 월 55만원씩 갚고 있다. 더 이상 대출을 안 한다고 가정해도 30개월이 나간다.
우리사주도 이제 그에게는 부담이다. 4년 전만 해도 5만원을 웃돌던 회사 주식이었기에 우리사주도 배당받았다. 3만2000원에 회사가 50%부담하는 조건으로, 1만 6000원 밑으로만 떨어지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분양받았지만 현재 주가는 9000원 선이다. 이익은 커녕 1000만원을 갚아야 할 지경이다. 퇴직금 중간정산 대신 이 역시도 24개월로 45만원씩이 들어간다.
고정비를 빼면 네 식구의 생활비로 90만원 정도가 남는다. 실제 네 식구의 생활비인 셈이다. 경조사라도 몰리는 달이면 까마득하다.
집을 살 때만 해도 대출은 받았지만 정부의 계속된 부동산 부양책에 그래도 지금보단 오를거란 기대가 있었다. 3억원에 샀던 집값은 제자리걸음이다. 주변 아파트를 보면 떨어지지 않은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들 정도다.
◇희망없는 내일, 종합적으로 살피는 정책 필요
최 과장은 직장인의 자회상이다. 이는 평범함 가장이자 외벌이 샐러리맨의 가계 대차대조표다. 그는 “열심히 일해도 항상 마이너스”라며 “체감경기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보다 처참하다”고 말한다.
경제주체들의 우울한 경기 의식은 지표에서도 드러난다. 경제심리지수(ESI)는 2012년 6월 100이하로 돌아선 이래 2년 넘게 줄곧 100 문턱을 넘지 못한다. 경제심리지수(ESI)는 기업경기실사지수(BSI)와 소비자심리지수(CSI)를 혼합한 지표로 100보다 낮으면 민간 경제심리가 과거 평균보다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 경기를 보여주는 BSI 역시 2010년 5월 100에 근접한 이후 줄곧 100을 밑돌고 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경제주체의 심리가 해결이 안 되면 정책효과도 미미할 수 밖에 없는데, 경기불황이 이어지면서 그런 형국”이라며 “소득을 소비할 수 없는 주거, 노후 불안, 일자리 불안 등을 종합적으로 살피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