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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환율이 주가를 따라 움직이는 까닭은

선명균 기자I 2000.09.23 14:42:03
주식시장이 채권시장과 외환시장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가운데 환율이 주가의 움직임에 따라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 한주간은 이런 양상이 뚜렷이 나타났다. 주가가 50포인트 이상 폭락하던 18일에는 환율이 3개월만에 1130원대로 올라서는 폭등세를 보였지만 주가가 반등에 성공한 다음날 다시 1125원대로 떨어졌다. 환율이 주가를 따라 움직인다는 것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개장가. 외환시장이 주식시장보다 30분 늦게 개장하기 때문에 30분간 주가의 움직임을 지켜보다 전일 종가보다 크게 차이가 난 상태로 환율이 출발하는 경우가 많았다. 18일에는 전일 종가보다 4.1원 높게 거래가 시작됐고, 20일 개장가는 전일 종가보다 무려 7.3원이나 차이가 났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기본적으로 외환시장을 움직이는 요인은 수급이다. 외환시장에 달러의 공급과 수요가 생기면 환율의 변동을 예상하고 환차익을 노린 은행간 투기성 거래가 이어지며 환율이 결정된다. 주식시장도 환율을 결정하는 중요한 수급요인 중 하나다. 외국인이 국내주식을 사들이면 외환시장에 달러공급이 늘어 환율이 내려가고 반대로 주식을 팔아대면 달러수요가 증가하여 환율이 올라가게 된다. 그러나 최근 외환시장에서는 이런 수급상의 이유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주식시장은 3영업일후 결제시스템이기 때문에 오늘 외국인들이 주식을 매도했다면 매도대금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최소한 3일후에나 가능하다. 외국인의 주식매도금액이 전부 달러역송금 수요가 된다 하더라도 실제로 외환시장에 유입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3일을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중 주가가 조금 상승하는 기미를 보이면 환율은 하락했다가 다시 주가가 하락하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오름세로 고개를 든다. 이처럼 환율이 주가에 대해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우선 금융시장 전체에 퍼져있는 불안심리에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최근 고유가에 따른 물가불안, 포드의 대우차 인수 포기 등 굵직굵직한 악재들이 계속 터져나오는 와중에서도 정부는 거시지표 하나만을 내세우면서 "아직 위기상황은 아니다"고 주장해왔다. 22일 진념 재경부장관이 "현 경제상황이 어렵다"며 위기상태임을 인정하고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지만 처리해야할 법안이 산적한 가운에 국회는 여·야간 정쟁만을 거듭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금융시장 전반에 걸쳐 심리가 극도로 위축되어 있는 상태에서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당장 눈에 보이는 주가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주가변동이 확실한 수급요인으로 작용할 뿐 아니라 국내외적인 상황을 대변할 수 있는 지표로서의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환율의 "주가 따라가기"가 계속될까. 대다수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당분간 이런 양상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시중은행 한 딜러는 "환율에 영향을 미칠 만한 특별한 모멘텀이 없는 상태"라며 "당분간 환율이 주가를 따라가는 모습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주가외에 환율을 움직일 요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22일 외환시장에서는 오후들어 이런 변화의 조짐을 약하게나마 보여줬다. 주가가 하락하는데도 한동안 보합권에 머물던 환율이 내림세로 돌아선 것. 결국 환율은 다시 상승세로 장을 마감하긴 했지만 이제 월말에 따른 네고장세에 돌입하는 시점에서 수급요인이 차츰 크게 부각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외국계은행 한 딜러는 "단시간의 움직임에 큰 의미를 둘 수는 없다"면서도 "다음주부터 월말 네고장에 들어가기 때문에 기업들의 수급물량이 늘면서 이번주와는 다른 양상을 보일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주일간 주가만을 숨가쁘게 따라온 환율이 과연 다음주에도 이런 움직임을 이어갈지 아니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정부의 대책마련과 국회 정상화 여부, 그리고 외환시장의 수급여건 변화에 그 열쇠가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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